[View&] 엉터리 시선 유도 시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사거리에 설치된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시설물의 빗금 표시가 차량 진행 방향에 맞지 않게 도색돼 있다.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차량이 양방향으로 진행하는 이곳에는 그림처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하는 ‘\’ 모양의 빗금이 설치돼야 한다.
구조물 충돌 방지 위한 차량진행 방향 표시
대부분 뭔지 모르고, 틀린 게 많아 ‘알아도 병’
엉뚱한 방향 유도 등 서울 시내 오류 수두룩
강변역 아차산로는 84개 중 82개나 ‘거꾸로’
도로ㆍ시설물 감독 주체 각각… 관리 안돼
광진구 아차산로를 지나는 지하철 2호선 교각의 빗금 표시들이 서로 반대로 설치돼 있다.
상계로 위를 지나는 지하철 4호선 교각의 빗금 표시 또한 반대로 설치돼 있다. 빗금 표시대로라면 운전자는 역주행을 감행해야 한다.

만약 누군가 사진 속 빗금이 지시하는 대로 차를 몬다면 대형 사고를 피하기 어렵다. 빗금의 모양이 역주행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빗금을 잘못 칠한 관할 기관의 명백한 잘못이지만 다행히도 운전자들이 그 의미를 모르는 덕분에 사고가 나지 않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알고 보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도로안전시설에 관한 이야기다.

“위험하니까 조심하라는 표시 아닌가요?” 17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에서 만난 조성민(34)씨는 도로 중앙 교각에 설치된 노란색과 검은색 빗금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다. 눈에 잘 띄는 모양과 색깔로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건 맞지만 빗금의 모양으로 차량 진행 방향을 지시, 유도함으로써 구조물과의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 빗금의 주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운전하다 보면 흔히 만나는 이 빗금은 도로안전시설 중 하나인 시선유도시설로 정식 명칭은 ‘구조물 도색’이다.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구조물을 왼편에 두고 차량이 진행하는 경우 빗금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해야 한다. 반대로 오른편에 구조물을 두고 진행할 경우 빗금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한다. 즉, 빗금 아랫부분이 차량이 지나는 도로 쪽을 가리키는 형태가 되어야 맞다.

그러나 한국일보 ‘View&(뷰엔)’팀이 살펴본 서울시내 주요 도로의 구조물 도색 중에는 빗금의 방향이 잘못된 경우가 수백 건에 달했다. 특히, 지하철 2호선의 지상 구간인 한양대역부터 강변역까지 이어지는 아차산로의 경우 도로 중앙 교각에 설치된 84개의 구조물 도색 중 82개의 빗금 방향이 거꾸로 돼 있었다.

지하철 4호선 창동역~당고개역 구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엉터리 구조물 도색은 서대문구 홍제교차로, 성북구 정릉교차로, 용산구 북한남삼거리, 마포구 광흥창역사거리 등 차량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 흔하게 발견됐다. 구조물 도색 외에 각종 교통 표지판 오류도 다양하고 흔했다.

12일 성동구 아차산로 중앙을 지나는 지하철 2호선 교각 빗금이 국토부 지침과 반대로 도색돼 있다.
차량 진행 방향에 맞는 빗금은 반대다.
13일 서대문구 홍제교차로와 연희로가 만나는 지점의 구조물 도색이 잘못 설치돼 있다.
교각을 사이에 두고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경우 빗금은 ‘V’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 맞다.
12일 노원구 월릉교사거리를 지나는 북부간선도로 교각하부에 빗금이 잘못 설치돼 있다.
차량 진행 방향이 구조물의 왼쪽일 경우 빗금은 반대 방향이 맞다.
12일 용산구 북한남삼거리를 지나는 한남1고가 교각에 엉뚱한 모양의 구조물 도색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 맞는 빗금은 ‘/’ 모양이다.
12일 노원구 상계동을 지나는 지하철 4호선 교각 아래 잘못 설치된 구조물 도색의 일부를 구청에서 만든 도안과 그라피티가 뒤덮고 있다.

사고를 유발하는 엉터리 안전시설이 도로를 점령한 것보다 더 황당한 점은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서울시를 비롯한 관리 주체들이 문제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하철 지상구간 시설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연 2회 정기적으로 시설물 점검을 하고 있지만 구조나 안전에 집중하다 보니 빗금 표시 오류는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내년 예산을 책정해 전면 수정하기로 내부에서 결정했다”고 18일 알려 왔다.

도로안전시설의 일관성 있는 설치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는 시설물마다 관리 주체가 복잡하게 나뉘어 있는 탓도 크다. 대형 교량이나 고가도로의 경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 관할이지만 지하철은 서울교통공사, 순환도로는 서울시설공단, 일반도로는 권역별 도로사업소가 관리하다 보니 업무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안전총괄본부 관계자는 용산구 한남1고가의 구조물 도색 오류에 대해 문의하자 “해당 도로를 관리하는 서부도로사업소에 문의하라”고 했다가 뒤늦게 “2016년 구조물 도색을 할 당시 작업자들이 실수로 잘못 도색한 것으로 보인다. 빠른 시일 내에 시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통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도시교통본부는 “조치가 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서둘러 파악한 후 지도 감독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조물 도색을 비롯해 각종 교통 관련 표시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 온 택시기사 손복환(73)씨는 “도로 위 교통 표시는 사고 예방을 위한 시설이므로 보여주기 식 장식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도로안전시설로 인해 세금이 낭비될 가능성도 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잘못된 교통 표시가 사고 원인을 제공한 경우 당사자나 보험사가 차후 관리 기관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라고 하더라도 국가 기준에 따라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서울시가 미리 문제를 파악해 시정을 지시했어야 한다”면서 “교통안전을 위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인 만큼 하루속히 원칙대로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13일 서대문구 홍제동 서울여자간호대입구교차로에 설치된 ‘STOP(정지)’ 표지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주 도로로 합류하는 차량에 우선 정지를 지시하는 정지 표지는 오른쪽 이면도로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13일 종로구 세검정로에 설치된 두 개의 표지판에 육교의 높이가 각각 다르게 표시돼 있다.
13일 서대문구 성산로 중앙버스정류장에 ‘노면 고르지 못함’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만 이곳 노면은 고르다. 또한 버스의 경우 전용차로 진입이 가능하므로 오른쪽 통행을 지시하는 화살표 표지는 잘못이다.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