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시민들이 15일(현지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가 크로아티아를 4-2로 누르자 거리로 몰려나와 국기를 흔들며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월드컵이 끝났다. 축제가 화려했던 만큼 끝난 뒤의 공허함도 크다. 4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대회가 시작되기 전 주위엔 월드컵에 시큰둥했던 이들이 많았다. 월드컵이 별거냐, 한국은 3전 전패할 텐데 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비아냥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월드컵이 킥오프되자 상황은 반전됐다. 곁눈질로 지켜보기 시작한 그들도 한국이 독일을 꺾을 때엔 마치 친동생이 경기에 출전한 듯 열광했다. 신성 킬리안 음바페의 등장에 환호했고, 인구 415만 명의 소국 크로아티아의 투혼에 감격했다. 6골을 먹은 뒤였음에도 월드컵 첫 골을 넣고 환호하던 파나마 선수들의 눈물도 잊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월드컵은 예상치 못한 각본의 드라마를 완성시키며 그저 그런 대회일 거라 떠벌리던 회의론자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렸다.

밥이나 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공 하나에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임에 세계는 왜 그리 열광하는 걸까. 왜 인류는 공놀이에 집착하는 걸까.

공은 곧 놀이다. 완벽한 구의 모양을 한 공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원초적이고 쾌락적인 유희의 도구일 것이다.

해외를 다니면서 목격한 인류의 공놀이 역사에 놀란 적이 여러 번이다. 지중해 시칠리아 섬의 로마 유적 피아차 아르메리나의 빌라 카살레 바닥엔 당대의 풍속을 보여주는 모자이크가 보존돼 있다. 그 중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공놀이를 하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4세기에 이미 지금의 비치발리볼을 즐겼던 것이다.

멕시코 마야의 대표 유적인 치첸이트사에서도 놀라운 공놀이 역사를 볼 수 있었다. 거대한 피라미드 옆에는 웅장한 규모의 폭탁폭 경기장이 있다. 고무나무에서 추출해 만든 고무공을 엉덩이 허벅지 어깨 등을 이용해 주고받으며 경기장 가운데 벽 높이 설치된 동그란 림 안에 집어넣는 팀 대항 경기다. 당시 서구에선 기껏 돼지오줌보나 차고 다닐 때 이곳에선 완벽한 구 모양의 고탄력 고무공으로 게임을 즐겼던 것. 마야의 폭탁폭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엄숙한 종교의식이었고, 경기 뒤엔 승자나 패자의 목을 내놓아야 했다고 한다.

7년 전 홍성택 대장의 그린란드 종단 탐험에 참여했을 때다. 탐험대가 베이스캠프를 차렸던 일루리삿은 해안가의 작은 마을이다. 한여름을 제외하곤 온통 얼음이 뒤덮고 있는 곳인데 마을 한복판 축구장만큼은 항상 제설작업을 펼쳐 맨땅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그곳에서 아이들의 축구를 지켜보며 백야의 지루함을 달랬다. 당시 탐험대의 준비과정에서도 축구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나름 마을의 유지였던 한 주민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광팬이었는데, 탐험대가 박지성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줬다. 척박한 그린란드의 마을도 이미 맨유의 영토였던 것이다.

2001년 아마존의 한 부족은 고작 쌀과 설탕, 기름, 소금, 약품 조금하고 축구공 2개를 받는 조건으로 유전과 파이프라인 건설권을 이탈리아 유전회사에 넘겨줘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 야비하고 기만적인 거래에서 눈에 띄는 건 축구공 2개다. 개미집이나 야자열매만 차고 놀던 원시부족에게 축구공은 땅의 일부를 내줄 만큼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놀이란 실없는 짓이다. 하지만 실없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됐다. 일에서 풀려나 유희하는 인간인 ‘호모 루덴스’로서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 아이들과 공을 차며 가족이 하나 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이다. 공놀이 같은 작은 행복들이 모여 결국 인생의 결들이 채워지는 법이다.

호모 루덴스의 여건이 마련됐으니 이젠 공 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베란다나 창고 한 구석 먼지 쌓인 공을 꺼내 바람을 넣고 그 탄력을 다시 느낄 시간이다. 월드컵이 괜한 축제가 아닌 건 그 하찮아 보이는 공놀이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줘서가 아닐까.

이성원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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