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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무역전쟁으로 그치지 않을 갈등

입력
2018.07.17 19: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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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경쟁 속 커져 가는 중국 패권주의

공통문화 명분 ‘조공관계’ 부활 노려

중국에 과도한 경제적 의존은 위험

두 경제대국의 무역전쟁이 요란하다. 여기서 ‘전쟁’은 그냥 비유는 아니다. 전쟁은 꼭 군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은 여러 방식으로 존재한다. 정치가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라는 것은 이미 정치학에서 알려진 사실이고, 무역도 그렇다. 근대 이후엔 군사력만 강한 강국은 존재하기 힘들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결합할 때, 비로소 전쟁은 위협적이다.

두 나라의 긴장이 무역전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정보통신 기술에서 누가 지배력을 가지느냐는 문제는 경제적 경쟁력뿐 아니라 군사력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나 통신기술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의존할 경우, 군사력 자체가 무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유령함대’는 중국이 과학기술에서 미국을 압도하면서 생기는 전쟁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미중 갈등은 조만간 해결되지도 않을 듯하며, 앞으로 한동안 갈등의 그림자는 점점 길어질 것이다. 또 무역전쟁이 단순히 트럼프의 막가는 스타일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다. 오바마는 우아한 수사학으로 미중 사이의 갈등을 덮었는데, 트럼프는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갈등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갈등은 20세기 초 이후 최강대국 지위를 누려 왔던 미국이 중국의 팽창 앞에 불안감을 가지는 데서 생긴다.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을 모델로 삼아 역사에서 반복되는 국가들의 싸움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처럼 두 나라가 서로 공격적으로 맞대응한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쟁의 가능성은 훨씬 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미국 사람들은 벌써 여러 통계에서 미국이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미국을 지금보다도 더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은 필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두 나라의 갈등은 큰 위험이지만, 경제력에 근거한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는 담담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 그와 달리 차분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과거 주변국이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관습을 중국이 재현하려는 경향에서 기인한다. 과거 오랫동안 대국이었던 중국이 다시 힘을 쓰는 것만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피곤한 일인데, 조공을 바쳤던 과거 역사를 중국이 공통의 문화적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21세기에 재현하려고 할 경우, 그 피곤함은 몇 배로 커진다.

서구가 세계사에서 지배력을 행사한 이후 다른 곳에 괴로움을 주었지만, 그래도 서구에서는 한 나라가 지속적으로 패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해 거의 모든 나라가 돌아가면서 번영했으며 교대로 힘을 행사했었고, 그 덕택에 민족들 사이에 원한은 서로 상쇄된 면이 있다. 그래서 서구의 역사 서술에는 상당한 균형이 있다. 그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패권을 행사했었고, 따라서 과거의 세력관계를 부활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는 과거의 역사 서술뿐 아니라 미래의 국제관계도 꼬이게 만든다.

그래도 중국이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나 민주주의 질서를 받아들인다면, 그런 불안이나 위협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당 지배에 의한 정치체제를 유교적 질서와 결합하면서 중국은 국가주의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금 중국인들 가운데 정치적 자유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가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불길하게 다가온다. 중국 정치인들과 가까웠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은 잘라 말한다. “중국에 민주주의 혁명 같은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톈안먼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러니, 중국의 패권적 국가주의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교역량이 커진다고 갈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중국에 경제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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