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만, 우리가 19세기를 잘 보냈으면 20세기를 약소국의 설움으로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한탄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때 우리가 빨리 문호를 개방하고 산업화에 성공했으면 망국과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계산이 아마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런 계산이 얼마나 믿을만한지의 여부를 떠나 19세기가 우리에겐 트라우마의 100년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4차 산업혁명에 우리만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19세기 트라우마’가 자꾸 떠오른다. 그게 4차가 됐든 5차가 됐든, ‘산업혁명’이라는 특급열차에 탑승하지 못하면 다시 시대에 뒤쳐져 약소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반대로 이번에 그 특급열차에 잘만 탑승하면 세계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게 아닐까? 예컨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지난 시절의 구호에 이런 정서가 압축적으로 잘 반영돼 있다.

우리 눈앞에는 4차 산업혁명만 있는 게 아니다. 대내적으로는 이미 생명을 다한 87년 체제가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동북아 냉전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요컨대 4차 산업혁명, 제7공화국, 동북아 냉전해체라는 세 가지의 전환기를 한꺼번에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삼중전환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변하는 두 가지 개념은 초지능성과 초연결성이다. 초지능성은 한 마디로 기계가 지능을 갖는다는 말이고 초연결성은 기계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달한다고 한다. 최근 인공지능이 급속하게 발전한 데에는 빅데이터가 큰 역할을 했다. 빅데이터는 정보통신 혁명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능과 연결은 생물학적이든 인공적이든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87년 체제를 대체할 제7공화국을 준비하는 논의에서도 지능과 연결은 중요한 요소이다. 어느 정치세력을 막론하고 새로운 헌법에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넣자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다. 지방정부에 권한을 많이 넘겨주는 것은 말하자면 ‘지능’을 부여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게 이전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지방의 수평적인 연결체로서의 대한민국은 수직일변도의 위계질서에 익숙한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는 단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수평적이고 분권적인 네트워크가 정보의 흐름과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뜻이다. 물론 수직적인 위계구조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일사불란한 행동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견제가 없는 수직적인 위계구조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일으키는지 최근의 이른바 ‘갑질 재벌’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엄청난 위력은 지난 촛불혁명이 이미 증명했다. 이런 작동방식은 기업이나 정부조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극소수 오너 일가가 판단과 결정을 독점하고 직원들은 그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면 제2, 제3의 ‘물컵 갑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느 조직이든 그 구성원이 조직의 일원으로 보람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지능’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 사이의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지능과 연결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강화한다. 이렇게 네트워크로 연결된 작은 지능들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슈퍼지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른바 집단지성이 형성되는 셈이다. 87년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공화국을 준비하는 지금, 단지 헌법 문구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신경망을 다시 재배선하는 문제까지 고민해야 한다.

지능과 연결은 동북아의 냉전구조를 허무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미국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아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지능은 거세돼 있었다. 또한 70년의 분단 역사는 우리를 섬으로 고립시켜 대륙과의 연결을 차단했다. 따라서 냉전구조의 해체는 우리의 지능으로 새로운 연결점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냉전시대의 남북관계는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의 양단이 대립하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다른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두 개의 코리아가 평화롭고 수평적으로 연결돼 상생공존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다. 대륙과의 연결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력과 인식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역시나 연결은 지능을 돕는다.

지능과 연결이 지금 삼중의 전환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 지반에 흐르는 근본적인 흐름을 읽는 유의미한 단서는 될 수 있다. 이 지혜를 당장 적용해 보면 삼중전환기라는 시대의 파도를 넘는 과정에서부터 집단지성의 네트워크가 절실해 보인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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