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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근심을 잊는다, 원추리

입력
2018.07.17 11:19
수정
2018.07.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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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느껴지는 더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여름인데 어떻게 올 여름을 보낼 것인지 걱정이 앞서네요. 주 52시간의 시작이나 최저임금제 같이 모두가 행복한 방법으로 풀어내기 참 어려운 문제들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우려가 담깁니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일에는 온통 크고 작은 근심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일 가운데 4%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걱정이라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도 필요해 보이기는 합니다.

해가 긴 덕분에 한 낮의 더위를 피한 어스름한 저녁 즈음 산책을 나서니 바람도 서늘해지고 한결 기분이 좋아집니다. 책상머리를 탈출하여, 나무도 보고 풀도 만나며 걷노라니 진정 위대한 생각은 걷는 데서 나온다는 니체의 말처럼, 생각도 마음도 정리되고 몸도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걷던 여름 산책길에서 잘 심어 가꾸어 놓은 원추리 무리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답던지요. 그리고 마음은 이내 서울을 떠나 지리산 노고단 자락에 비와 바람을 따라 넘나드는 운무가 서서히 걷히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원추리군락에 다다르더군요. 일생에 이렇게 순간순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는 자연풍관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감사하는 사이 어느새 근심이 사라지더군요. 왜 원추리를 두고 망우초(忘憂草)라고 하는지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원추리란 고운 이름은 훤초(萱草)라는 중국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훤초가 원쵸로 불리우고, 나리처럼 ‘리’라는 접미어가 붙어 원추리가 됐다는 견해입니다. 당나라 황제는 양귀비와 함께 정원에서 모란꽃을 즐기다가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하고 모란꽃은 술을 잘 깨게 한다’는 노래를 했다 하고 진나라에는 헤어질 때 근심을 잊게 하기 위해 원추리를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여러 시와 기록에도 나오지만 ‘가지에 달린 수많은 잎처럼 일이 많지만 원추리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잊었으니 시름이 없노라’는 신숙주의 노래도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원추리집안 식물에는 세계적으로 20~30종류들이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등 동북아시아가 그 분포의 중심이며, 지금까지 7만5,000종류의 품종들이 나올 만큼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식물이지요. 그래서 원추리는 당연히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바라보는 이의 근심을 잊게 해주는 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원추리꽃을 먹으면 정신이 아득해져 마치 취한 것처럼 돼 근심을 잊어버린다”는 기록이 ‘이화연수서(李華延壽書)’에 기록되어 있고, 원추리 종류들이 수면 장애를 치료하고 기분을 바꾸는 데 사용되어 온 특성들이 과학적으로 검증 된 바 있고, 이 식물 추출물이 수면 패턴을 바꾸고 동물 모델에서 우울증을 완화한다는 긍정적인 증거도 나왔다는 기록들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긴긴 세월 속에 쌓이고 싸여 내려온 이야기들은 언뜻 비과학적으로 들릴 때도 있지만, 전통지식으로 모아 하나하나 소홀히 하지 말고 현대과학으로 풀어내면 그것이 곧 미래로 연결된다는 생각입니다. 산책길에서 만난 원추리의 아름다움에서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니 긍정적인 내일이 보입니다. 정말 근심을 잊게 하는 망우초 원추리 맞습니다.

# 10여 년 전 한국일보에서 오래도록 사랑을 받았던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칼럼은 식물학자인 제게 삶과 식물을 바라보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풋풋했던 마음이 그리워, 여러분 삶에도 초록빛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하지만 용기 내어 ‘다시 광릉 숲에서’를 시작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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