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두영 방송스태프노조위원장

김두영 방송스태프노조 위원장
“제작현장 비정규직이 가입 대상
하루 평균 노동시간 20~22시간
사고 나도 방송사는 책임 없어
휴식ㆍ8시간 수면권 등 요구할 것”
김 위원장은 이달 말 처음으로 노조비를 걷는다. 2016년 드라마스태프협회를 꾸린 이후 2년 간 노조 준비위원회 소속 28명과 함께 사비를 털어 활동했다. ‘왜 총대 맸냐’는 말에 그는 “너무 절실하니까”라고 답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이 일 하려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 막내가 고급 인력이 됐어요. 얼마 전 드라마 찍는데 조명팀 5명 중에 4명이 ‘감독급’이었다니까요. 이런 현장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9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15년차 조명 발전차 기사 김두영(49)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4일 출범한 방송스태프노조 초대 위원장을 맡은 김씨는 “일반 회사와 달리 방송직군은 뿔뿔이 흩어져 일하기 때문에 일일이 촬영현장에 나가서 노조 가입서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노조 말도 못 꺼냈던) 10년 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소속인 방송스태프노조는 작가, 독립PD, 조명, 장비, 카메라, 분장 등 방송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면 가입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온라인 신청서를 받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1,000명 이상 신청서를 냈는데, 신청자가 계속 늘고 있어 정식 가입 절차를 끝낸 노조원을 집계하는데 시일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에 대한 방송 스태프들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 배경은 근무 환경에 있다. 김 위원장은 “15년 전에도 잠 못 자고 일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방송사가) 늦게라도 밥은 먹였다. 지금처럼 삭막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10여 년간 일했던 그가 방송국 일을 시작한 건 30대 중반인 2003년 말 무렵이다. 친구인 PD가 ‘심심하면 놀러오라’는 말에 방송국 견학 갔다 그길로 조명 스태프가 됐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처음에는 밤새는 게 힘든지도 모르고 일을 했다. 하지만 “자고 먹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시달리다보니까” 일하는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명 스태프 6년차, 촬영 중 어깨를 다치면서 발전차 기사로 일을 바꿨다.

김 위원장은 휴대폰에 저장된 한 노조원의 드라마 촬영 일정표를 내밀었다. ‘테스트 촬영’인 첫날은 “가볍게 10시간”을 일한다. 다음날 촬영은 새벽 6시에 집합해 그 다음날 새벽 3시에 끝난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20~22시간. 김 위원장은 “방송 스태프들이 일 년 평균 드라마 두 편에 투입돼 11개월을 이렇게 일한다. 새벽 2,3시가 되면 눈이 풀리면서 표정이 없어진다. 대다수 촬영 사고가 이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4일 노조 출범식에서 밝힌 요구안에 ▦점심시간 휴게시간 보장 ▦하루 8시간 수면권 보장이 들어간 배경이다. 요구안에는 이 외에도 ▦근로계약서 작성 ▦초과 노동수당 지급 ▦야간 촬영 종료 시 교통비 숙박비 지급 등이 담겼다.

김두영 방송스태프노조위원장이 한 노조원의 제작 스케줄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 평균 20시간을 근무한다. 신상순 선임기자

방송국 소속 정규직 제작인력이 주 52시간 근무를 적용받게 되면 저절로 제작 환경이 나아지지 않을까. 김 위원장은 “저도 본사 직원들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근로시간을 준수하면 좋아질 줄 알고 7월 1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데 방송사들이 ‘탄력근로제’라는 해괴망측한 걸 요구하더라”고 말했다. 정규직인 제작진이 3개월 집중해 드라마를 만들고 4개월 유급휴가를 가는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면 일용직인 제작 스태프의 노동 환경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비정상적인 근무 환경이 지속되는 이유는 방송 스태프 상당수가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는 법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작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외주 제작을 크게 늘리면서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협력업체 같은 위계 구조가 형성돼 있고, 상당수 방송 스태프들은 다단계 하청 계약을 맺고 있다. 드라마제작환경개선TF의 드라마 스태프 고용형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드라마제작 노동자(112명)들의 프리랜서 계약이 67%(75명)로 가장 많았고, 계약직도 19.6%(22명)였다. 김 위원장이 “방송국이 갑, 제작사가 을, 조명이나 카메라 감독급이 병, 우리 같은 프리랜서들이 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방송사가 제작사에 하청을 주면 제작사는 조명, 카메라 같은 각 팀의 대표인 감독과 턴키 계약을 해요. 각 팀 스태프는 구두로 고용해 제작현장에 투입돼 근로계약서 자체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제작사나 방송사는 책임에서 자유롭다. 노조는 스태프들이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 노조는 방송사가 스태프와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2015년부터 영화 촬영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의무화한 영화산업노조를 롤 모델로 삼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스태프가 한둘이 아니에요. 조명팀 막내 일당이 8만원에서 올해초 10만원으로 올랐는데, 20시간을 일하다보니 생활이 안돼요. 몇 년 하다 직급이 올라야 하는데, 일이 힘들어 신규 인력이 없고 20대 중반이 막내에요. (노조설립이) 더 늦으면 안 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