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과밀화’가 문제의 본질
사회적 비용 영세상인 전가는 폭력
대기업ㆍ카드사ㆍ건물주 분담해야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부가가치가 늘거나 생산성이 높아지진 않는다. 영세상인의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질 뿐이다.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다. 그러니 국민의 세금 지원과 대기업, 카드사, 건물주 등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사진은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회원들이 최저임금 인상 관련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나를 잡아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고교 동창 A(55)는 편의점 점주다. 점포를 다섯 개나 운영한다. 처음엔 편의점 부자인줄 알았다. 그는 10여년 전 회사를 그만둔 뒤 퇴직금을 투자해 편의점을 열었다. 프랜차이즈 본사 영업사원은 별다른 기술이나 경험 없이도 안정적 수익이 보장된다고 꼬드겼다. 출발은 괜찮았다. 네 식구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1년 뒤 같은 블록과 길 건너편에 경쟁사 편의점이 들어섰다. 얼마 뒤 도보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반경 300m 안에 10여개 편의점이 경쟁하고 있었다.

A는 수입이 줄어들자 편의점 하나를 더 냈다. 본사는 가맹 편의점의 매출과 수익에 도통 관심이 없었지만 점포 확장에는 적극적이었다. 편의점은 우후죽순 늘어났고 수입은 계속 줄었다. 이렇게 A는 편의점 부자가 됐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인상돼 ‘알바’ 시급을 1,000원 이상 올려주면서 순익은 10%가량 더 줄었다. 부부가 1년 365일 밤낮 없이 일해도 편의점 한 곳당 평균 순익은 알바생 월급과 큰 차이가 없다.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업계 빅5 점포만 4만개가 넘는다. 6년 새 두 배가 늘었다. 지금도 하루 10개꼴로 편의점이 생긴다.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안에 약 100개 편의점이 밀집해 있다. 골목상권 보호 규정은 있다. 편의점은 250m 이내 출점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다르면 출점이 가능하다. 한 점주가 점포를 더 낼 수도 있다. 국내 편의점은 인구 1,300명당 1개꼴. ‘편의점 대국’ 일본(인구 2,200명당 1개)보다 훨씬 조밀하다. 도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힘든 과포화 구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점포 확장에 필사적인 이유는 뭘까. 가맹점이 개설되면 가맹비는 물론 지속적으로 로열티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익은 일정 비율로 나누지만 알바생 인건비, 점포 임차료, 재고 비용 등은 대개 편의점 점주 몫이다. 무분별한 출점 경쟁에 따른 미래의 불확실성 또한 점주에게 전가된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성장세가 다소 둔화하고 있지만 매출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 격이다.

지난해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월 446만원. 편의점 두 개를 운영해도 4인 가구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득 수준이 이렇게 낮으니 비용이 조금만 늘어나도 감당이 안 된다. 알바생의 임금 인상은 비용 증가를 뜻한다. 평소 먹는 밥의 양을 줄여 알바생에게 퍼주는 셈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올랐으니 밥 그릇은 더 줄어들 게다. 자기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에 가까워지면 점포 문을 닫든지 알바생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부가가치가 늘거나 생산성이 높아지진 않는다.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다. 편의점이 늘어나면 프랜차이즈 본사와 카드사 수입도 늘어난다. 건물주에게도 득이 된다. 그러니 대기업, 카드사, 건물주가 비용을 분담하는 게 옳다. 공익적 비용을 영세상인에게만 떠넘기는 건 사회적 폭력이다. ‘을(乙)과 을의 싸움’을 만들어선 안 된다. 본사의 무차별 점포 확장과 납품 단가 폭리를 막아야 한다. 과다한 임차료와 높은 카드 수수료를 낮춰야 한다. 제도 개혁에는 입법이 필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게 딜레마다.

편의점 알바생이 하루 8시간 꼬박 일해 손에 쥐는 돈은 6만원. 하루 노동의 대가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 충분하다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편의점 점주도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알바생은 편의점 점주의 적이 아니다. 연대해야 할 사회적 약자이자 동료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나를 잡아가라’는 본질을 벗어난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는 게 영세상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A의 내년 소득은 올해보다 10%가량 더 줄어들 게다. 그의 편의점은 여섯 개로 늘어나려나.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