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ㆍ수당 연계 새 평가인증
보육교사용 필수 항목으로 지정
아파트 단지내 어린이집
입주자 동의 없으면 변경 못해
“다양한 상황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청회 한번 없이 밀어붙여” 비판
[저작권 한국일보]2018년 도입된 제3차 어린이집평가지표에 따르면, 이 어린이집은 기존의 어린이변기를 해체하고 성인변기를 설치해야 한다. 인천 삼산동 미래타운3단지 예능주공어린이집 제공

“선생님, 화장실! 화장실!”

인천 부평구 삼산동 아파트단지에 위치한 어린이집. 11일 오후 1시, 낮잠시간이 지나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칭얼대며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화장실 앞에 줄을 서 볼일을 본 아이들은 이내 다시 생기를 찾아 조잘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진한 아이들과 달리, 어린이집 원장 김옥주(56)씨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멀쩡한 어린이변기를 없애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정원이 48명인 이 어린이집에는 여아변기(좌변기)와 남아변기(소변기)가 2개씩 설치돼 있다. 어린이집 설치 기준에 따라 여아는 15~20명당 1개씩, 남아는 10~15명당 1개씩 변기가 설치돼 있어야 하니 적정 개수인 셈인데, 난데없이 이 중 하나를 폐쇄시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새로운 어린이집 평가인증 통합지표에 맞춰 원내에 성인용 변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기 때문.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지방자치단체와 한국보육진흥원 관계자가 ▦보육과정 및 상호작용 ▦보육환경 및 운영관리 ▦건강ㆍ안전 ▦교직원 등 지표를 바탕으로 현장평가를 한 뒤 등급(A/B/C/불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지난해 11월 도입된 ‘제3차 어린이집 평가인증 통합지표’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원내에 무조건으로 보육교사를 위한 휴게실과 성인용 변기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항목이 어린이집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장 얘기다.

새로운 어린이집 평가인증 통합지표에 따르면 원내 성인용 변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박구원기자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대부분 어린이집은 관리사무소와 건물을 겸하고, 교사들은 이 공용건물에 설치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사 A씨는 “어차피 교사들은 관리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왜 굳이 새로 성인용 변기를 아이들과 같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만들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오히려 아이들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교사 입장에서는 더 불편하다”고 말했다.

더 큰 난관은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의 경우 사유재산이 아닌 아파트 주민공동시설이라 용도 변경을 하려면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입주자들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 휴게실 설치 역시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조리실 옆 1㎡도 되지 않는 빈 공간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으면 휴게실로 인정해주겠다는 식의 주먹구구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인증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각종 지원금과 보육교사 장려수당 등이 연계돼 있어서다. 경기 고양시 한 사립어린이집 원장 박모(54)씨는 “우리 지역구만 해도 평가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은 월 10만원 정도의 지원금과 조리원 인건비 월 20만원, 교재ㆍ교구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데 인증을 받지 못하면 아무 혜택이 없다”라며 “일반 원장들 대상 공청회 한번 없이 제도를 밀어붙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복지부 보육기반과 관계자는 “전국에 어린이집이 4만개인데, 표준지표를 다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하는 부분, 지나쳤던 부분인 것을 인정하며 현장 상황에 맞게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한국보육진흥원 관계자가 교사휴게실로 만들라고 제안한 1㎡ 크기의 통로. 인천 삼산동 미래타운3단지 예능주공어린이집 제공

글ㆍ사진=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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