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독일에 승리한 덕에 본선에 오른 멕시코 사람들이 교민들을 어깨에 태우고 환호했다는 뉴스에 뒤늦게 찾아온 오십견의 불편함이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다. 독일이 이길 준비가 전혀 안된 상황에서 러시아에 갔다가 세 번씩이나 낭패를 당했다는 품격있는 농담도 SNS를 통해 퍼졌다. 앞선 두 번은 1, 2차 세계대전을 꼽는다.

작가 켄 폴릿은 그의 20세기 시리즈 3부작의 1부와 2부에서 두 차례의 낭패를 아주 실감나게 그렸다. 1차 세계대전을 다룬 1부 ‘거인들의 몰락’은 영국, 독일, 프랑스가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몰락하고 세계의 중심이 미국과 러시아로 옮겨가는 한편 귀족으로 군림했던 세력들 대신 낮은 자들이 세상에 등장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몸집이 일반 사람보다 월등히 커서 그런지 거인은 대체로 두려움, 폭력, 정복의 대상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스위프트는 ‘걸리버여행기’에서 거인국 사람들을 내세워 인간의 추함과 결점을 돋보기를 통해 보는 것처럼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소인국에서는 자신의 모습도 흉악망측했을 것이란 걸리버의 고백을 통해 과연 인간의 사소한 결점을 따지는 것이 현명한 지에 대해 묻는다.

요즈음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 ‘디지털 자이언트’들의 등장으로 거인의 명예가 회복하는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그의 성과에 대해 과도한 칭송이 이어지자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던 바로 그 거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수백 개의 하청과 재하청 업체들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모여 거대한 오프라인 하이어라키를 형성하고 디지털 자이언트들은 민첩한 ‘앵클 바이터’들을 낳아 새로운 온라인 생태계를 만든다. 이들 거인들이 생존을 담보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축을 벌인다. 각축전의 성패는 경영자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좋은 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성과를 내면서 갈린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경영은 예술이다. 일단 고유한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 경쟁자가 쉽게 찾아내거나 따라할 수 없는 경쟁우위를 갖는다. 그 다음엔 자율적으로 창의적인 행동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함께 혁신 가속 페달을 밟아가면서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한 축적과 돌파의 과정을 거쳐간다. 일관된 방향으로 밀면서 추진력을 쌓아가는 축적 과정을 생략하고 돌파만 좇는 기업은 빨리 성장하는 듯하지만 빨리 주저앉는다. 오랜 시간을 통해 축적의 과정을 충실히 밟은 기업일수록 탄탄한 어깨를 가진 거인이 되어 직원, 고객, 시민 등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다 태울 만큼의 큰 레버리지를 만들어 낸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반세기를 지나오다 보면 성공의 덫에 빠지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갖가지 외풍에 휘말려 오십견 같은 퇴행성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좀 쉬면서 부지런히 스트레칭을 해주면 될 일을 중환자처럼 병실에 가두고 샅샅이 해체해 치료하려 들면 과잉처방이다. 최근 금융위기도 없이 3%대의 낮은 성장률이 이어졌다.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단 13년에 불과하고 30년이 지나면 80%가 사라진다. 미국 상장기업들이 세 개에 한 개꼴로 5년 내에 파산, 청산, 인수합병 된다. 다양성, 역동성, 상호연결성으로 대표되는 환경의 복잡성이 커지고 예측가능성은 낮아지면서 적응에 실패하는 기업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불황기 성장은 혁신 기량에 달려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전략적 민첩성이 필수적이다. 축적의 기본기에 터잡아 멀리 보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큰 걸음으로 뛸수록 좋다. 그래서 거인의 어깨 하나 하나가 더 아쉽고 요긴한 판이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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