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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혁신성장 하려면 사람부터 바꿔야

입력
2018.07.13 15:48
수정
2018.07.13 19: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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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나서도 안 되는 혁신성장

경제팀 핵심 포스트들 성향이 문제

경제정책 전환 위한 대폭 인사 절실

작가 이병천의 빼어난 단편소설 ‘사냥’(1990)엔 습성을 역이용해 짐승을 잡는 다양한 사냥법이 소개된다. 흥미로운 사냥 얘기 같지만, 실은 바뀌지 않는 습성 때문에 마침내 포획되고 마는 짐승들의 슬픈 진실과 삶의 지독한 숙명에 관한 칼날 같은 은유다. 그 중 원숭이 사냥방법은 이렇다.

‘원숭이의 한 손이 겨우 들락거릴 수 있는 항아리에 향기 짙은 사과를 몇 개 넣어두고 동정을 살핀다. 이 경우에는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방정맞은 녀석들이 금방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녀석들은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어 어렵잖게 사과를 움켜쥔다. 그러나 주먹이 겨우 들락거리는 입구라서 사과를 쥔 손이 빠져나올 리는 없다.’

어떤 짐승이든 탐욕이 없지는 않겠지만, 예로 든 원숭이 녀석들은 한 번 손에 쥔 사과만큼은 절대 놓지 않는 습성 탓에 머릿골을 요리재료로 내놓게 되는 셈이다.

동물적 습성과는 다르겠지만, 사람의 성향도 바뀌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성향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행동방식을 형성하고, 결국 숙명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래 전에 인상적으로 읽었던 ‘사냥’ 이야기까지 떠올리는 건 좀처럼 ‘혁신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하고 표류 중인 지금의 경제정책 상황이 답답해서다. 뭔가 잘못됐고, 그걸 바로잡을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도, 실제론 변화를 거의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정부 역시 모종의 습성, 또는 성향과 관련된 ‘숙명의 덫’에 걸린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혁신성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엄연히 경제정책의 양대 축을 이룬 핵심공약이었다. 일구어 놓은 번영을 공정하게 나누는데 초점을 둔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이라면, 혁신성장은 더 많은 번영의 토대를 일구는 정책인 셈이었다. 그래서 진작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같은 분배정책의 홍수 속에서도 정책 쏠림을 막고 혁신성장의 불씨를 살리려는 의지가 없지 않았다. 올 들어 문 대통령이 기업의 첨단산업 현장을 잇달아 찾고, 최근 삼성 휴대폰 인도공장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손까지 잡은 것도 혁신성장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행보인 셈이다. 그럼에도 혁신성장은 여전히 정체된 상태다. 사람 좋다는 문 대통령이 격하게 답답함을 토로하고 부처를 질책해도 하염없이 겉도는 느낌, 그게 혁신성장의 현주소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현 정부에서 혁신성장은 대통령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겉돌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 정책기조를 주도하고 있는 경제팀 핵심인사들의 성향과 행동방식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뭔가 새로운 일을 꾸미고 만들어내는 ‘상인적’스타일이라기 보다는, 강고한 가치에 준거해 현실을 ‘바로잡는 일’에 특화된 ‘비판자’ 스타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좀처럼 현실과 타협하기 어렵다. 타협은 곧 가치 추구의 ‘후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냥꾼에게 잡힐 때까지 결코 손에 쥔 사과를 놓지 않는 원숭이들처럼, 그들은 누가 뭐래도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경제팀 핵심인사들의 비타협적 성향이 경제정책을 경직시켜온 사례는 무수하다. 경기불황이 아무리 심각하고 기업 투자가 절실해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는 재벌개혁을 결코 늦출 수 없다. 그러니 기업 지배구조개선보다 투자여건을 조성하는데 힘을 더 써야 한다는 주장이 들릴 리가 없다. 업계와 전문가들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을 강행해온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나,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문제에 관한 한 청와대와도 싸우겠다고 나선 김영주 고용부 장관 역시 습성과 성향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최근 정책기조를 좀 더 혁신성장 쪽으로 조정하겠다는 포석으로 경제수석 등을 교체했다. 하지만 혁신성장은 기재부가 하고, 소득주도성장은 청와대가 하자는 식의 어설픈 절충 정도로는 결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위태로운 ‘숙명의 덫’을 피하려면 사람부터 더 많이 바꿔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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