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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지구상의 마지막 모계사회를 탐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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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지구상의 마지막 모계사회를 탐험하다

입력
2018.07.12 16:44
수정
2018.07.12 18:5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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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나라

추와이홍 지음ㆍ이민경 옮김

흐름출판 발행ㆍ312쪽ㆍ1만3,800원

1977년, 노르웨이의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상상의 나라를 전 세계에 소개했다. 사회 주요 자리는 여성이 차지한다. 가정의 경제권을 쥔 가장도 여성이다. 이 책을 읽은 남성들은 책 속에서나마 씌워진 수많은 제약에 기함했을 것이다. 여성들은 이런 곳이 실재하길 바라는 소망 하나씩을 가슴에 품었을 뿐, 40년이 흐른 지금도 대부분의 사회는 남성을 중심으로 흐른다.

그런데 상상의 나라 이갈리아가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나라’는 지구상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계사회로 알려진 모쒀족 이야기다. 중국 서부 변방에 위치한 루구호 주변 윈난 지역에 살고 있는 모쒀족은 해발 3,600m의 거대한 석산인 거무산을 자신들의 신으로 모신다. 거무산신은 여성이다. 모쒀인은 오래 전부터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을 규정하고, 가족 내에서 여성을 가장으로 삼아 왔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집안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여자 아이들은 내면으로부터 자신감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난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였던 저자 추와이홍은 여행 차 들렀던 이 곳에서 새 삶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성별로 인한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음을 모쒀인의 삶을 보며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사는 동안 이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고 그는 썼다.

저자는 자신의 뿌리인 중국 문화와 모쒀인을 비교할 때가 많은데, 한국 여성을 대입해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아들 선호 사상에 반기를 드는 딸로 태어난 그가 여자들의 나라인 모쒀족에 빠져들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쒀족에게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물론 개념 자체가 없다. 우리 식으로 배우자나 애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아샤오가 있지만 똑같은 사회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모쒀족 일원은 한 아샤오와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언제든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모쒀족 여성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룰 수 있다. 가족에 남성 아샤오는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아이를 낳은 모쒀 여성은 모두 미혼모인 셈이다. 남성 역시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권리도 의무도 없다. 그렇다고 모쒀족의 가모장제가 일반적인 가부장제의 정반대는 아니다. 모쒀족은 남성을 하대하지 않고 차별 없이 대우한다.

모쒀족의 나라가 반드시 여성들의 유토피아라거나 올바른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남성중심사회를 전형으로 생각하는 인간 사회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성별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고, 그 자체로 자긍심을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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