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캄보디아 총선

당 해산ㆍ망명 등 야권 이미 초토화
‘들러리 야당’ 앞세운 무늬만 선거
‘33년 권좌’ 훈센 승리 기정사실화
反훈센 유권자는 찍을 당 없어
‘투표 포기’ 여론전으로 맞대응
“투표율 60%대 추락땐 훈센 타격”
33년간 캄보디아 권좌를 지키고 있는 훈센 총리가 4일 칸달 지역의 한 의류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훈센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하며 노동자 표심 잡기에 열을 올렸다. 칸달=로이터 연합뉴스

29일 치러지는 캄보디아 총선 투표에 나선 국민들은 무려 20개의 정당 이름이 쭉 나열돼 있는 투표 용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캄보디아 사람들의 투표를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유럽 국가들의 다당제 상황에서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오산이다. 맨 마지막 스무 번째 적힌 집권여당 캄보디아인민당(CPP)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선거를 위해 급조된 무늬만 정당에 가깝기 때문이다. 야당이 초토화된 캄보디아에서 이번 총선은 “훈센이냐, 아니냐”를 묻는 사실상 훈센 찬반 투표다. 전문가들은 33년째 권좌를 지켜온 훈센 총리(67)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하며, 관건은 투표율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反) 훈센 성향 유권자들이 얼마나 투표 보이콧에 나서는지가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독립 기념탑 주변 공원 담벼락에 캄보디아인민당(CPP)을 이끄는 행삼린 국회의장과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사진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29일 총선을 앞두고 공식선거운동이 7일부터 시작됐지만, 나머지 19개 정당후보들의 선거 벽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선거가 집권당 단독 출마로 치러지는 야당 없는 선거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놈펜=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야당, 언론, 시민단체 말살… “반딧불이, 유령 선거”

1985년부터 캄보디아 권력을 쥐고 있는 훈센 총리에게 2013년 총선은 아찔한 기억이다. 훈센 총리가 이끄는 인민당이 48.83%의 득표율을 얻어 승리하긴 했지만, 야권이 연합한 캄보디아구국당(CNRP)이 그에 못지 않은 44.46%을 획득하며 약진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인 캄보디아는 하원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승리한 다수당이 총리를 배출하고 있다. 당시 부정선거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훈센 사퇴와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등 대규모 반(反) 정부 집회와 파업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국민들의 거센 분노에 놀란 훈센 총리는 야권 초토화 작전으로 맞섰다. 지난해 11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을 내걸어 제1야당인 구국당을 강제 해산 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켐 소카 대표는 반역 혐의로 구속됐고, 구국당 소속 정치인 118명의 정치활동도 5년간 금지했다. 훈센의 유일한 대항마로 추앙 받던 야권지도자 삼랭시는 정권의 압력에 못 이겨 프랑스에서 망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구국당 의원 다수가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다른 야당들은 ‘반딧불’이나 ‘유령’으로 불리고 있다. 선거 직전 갑자기 만들어졌다가 선거 이후에 사라진다는 점을 비판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선거 구색을 갖추기 위한 들러리란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갑자기 튀어 나온 이들이 캄보디아 언어 보호 등 차별화된 가치를 들고 쓸데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선거가 끝나면 자취를 감춘다”고 보도했다. 호주 그리피스 대학에서 캄보디아 정치를 연구하는 리 모겐베서 교수는 “민주주의 탈을 썼을 뿐, 캄보디아는 제1당 독재국가다”고 비판했다.

적대적인 언론과 시민단체도 차례로 제거됐다. 독립언론이었던 영자지 캄보디아데일리를 71억 원의 세금폭탄 부과로 사실상 강제 폐간시키는가 하면, 프놈펜포스트는 훈센의 측근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 기업인에게 팔아 넘겼다. 훈센 총리의 철권통치를 비판하던 미국과 유럽연합(EU) 시민단체 인력들은 줄줄이 쫓겨났다.

훈센 총리는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국민들의 입에도 재갈을 물리고 있다. 프놈펜포스트에 따르면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총선 투표 시 사용되는 잉크가 지워지지 않을뿐더러 인체에 유해하다는 소문이 떠돌자, 정부는 이 같은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부 부처 합동으로 대국민 모니터링도 실시하고 있다. 실제 페이스북에 올린 자신의 결혼식 영상에서 “훈센은 권위주의 정부”라고 비판한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공포를 먹고 자라는 독재, 중국 지원에 기세 등등

훈센 총리가 이토록 강압적으로 야권 탄압에 나서는 데는 역으로 정치적 기반을 그만큼 공고하게 다져놨기에 가능한 행보란 분석이다.

훈센 총리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킬링 필드를 경험한 보수적 성향의 노년층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루즈 폴 포트 정권의 대학살을 경험했다. 최소 170만 여명이 목숨을 잃은 대학살의 공포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7일 공식 선거 운동 첫날 코 피치 섬에서 열린 CPP 유세 현장에서 만난 솜 유엉(53)씨는 프놈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훈센은 우리를 크메르루즈로부터 해방시켜줬고, 자유와 안정이 보장된 나라를 만들어줬다”며 “선거 승리를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훈센 총리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도 안정과 번영이다. 자신은 정권연장을 노리는 독재자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구원자라는 논리다. 각종 연설에서 구국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 역시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포석이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것 역시 훈센의 공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캄보디아는 연 7%대의 성장률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최근 훈센 총리는 노골적인 반미ㆍ친중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데 중국이 경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지원하며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정치 전문가인 정연식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훈센의 독재를 비판하며 원조 삭감 조치를 발표하고 압박했지만, 훈센이 꿈쩍도 하지 않는 데는 줄어든 액수 이상으로 중국이 보상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시들지 않는 민주주의 열망, ‘어게인 2013’ 재현할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야당 돌풍을 일으켰던 ‘어게인(again) 2013’이 재현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목소리가 아직 시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구국당이 득표율 44%를 얻으며 5년 전 총선 득표율을 유지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연식 교수는 “정권의 갖은 탄압에 야권이 무력화됐지만,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캄보디아 유권자의 40%는 훈센 시대의 마감을 바라고 있다”며 “다만 구국당이 사라져 야권의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투표율이 관건이 될 것이다”고 했다. 지난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85%였다. 정 교수는 “60%대로 떨어지면 훈센 정권의 정통성에는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야권지도자 삼랭시도 SNS상에서 이번 총선은 “가짜 선거”라고 규정하며 투표 보이콧에 나섰다. 그는 “투표를 하지 않는 소극적 저항이 독재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 반면 집권당은 “투표 보이콧은 반역죄”에 해당한다며 투표 독려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투표일에 집에만 있겠다고 말한 교사가 경찰에 잡혀갔다가 보이콧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풀려났을 정도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훈센의 장기 독재는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정치 냉소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정권교체를 강하게 열망했던 젊은이들은 2013년 패배보다 이후 가해진 강도 높은 야권 탄압에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캄보디아 주요 이동수단인 오토바이 툭툭(Tuk Tuk) 기사인 느 고르씨는 “5년 전에는 이기지 못했지만 바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다”고 입을 닫았다. 캄보디아 싱크탱크인 ‘퓨처 포럼(Future Forum)’을 이끄는 오우 뷔리억 대표는 “한 마리의 경주 말이 뛰는 레이스에 흥미를 느끼는 국민들은 없다”며 “그들의 지지자조차 결과가 너무 뻔하기에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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