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에서 ‘찬성’은 ‘어떤 견해나 제안 또는 사회적 행동이 옳거나 좋다고 판단하여 수긍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찬성’의 뜻을 고려하면,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적절하지 않다. 견해나 제안 또는 사회적 행동에 포함할 수 없는 ‘동성애’를 찬성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찬성하다’란 서술어에 맞춰서 ‘동성애’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 혹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 등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해석은 문장을 이해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어제부터 그 소설을 시작했다.”란 불완전한 문장(소설을 시작할 수는 없다)을 접한 이가 이 문장을 “어제부터 그 소설을 읽는 것을 시작했다.”로 해석하는 것처럼. 불완전한 문장으로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이처럼 맥락에 기대어 문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문장으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를 완전한 문장으로 받아들인다면, ‘동성애’와 ‘찬성’의 의미가 변질되며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동성애’를 ‘찬성하다’의 정상적인 목적어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사회적 입장이나 선택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애’를 사회적 입장이나 선택으로 볼 수 없다면 어휘체계상 그 반의어인 ‘동성애’도 그렇다. 즉 “이성애를 찬성하십니까?”가 부적절하면,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란 문장 역시 부적절한 것이다. 이처럼 맥락이 문장의 불완정성을 보완하지 못하면, 그 문장 표현의 문법적 가능성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 문법의 존재 이유가 여기 있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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