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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포용의 정책적 가치와 과제

입력
2018.07.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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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이 정책의 수사(修辭)가 된 지는 꽤 오래다. 대북 정책의 한 기조인 햇볕 정책은 포용정책의 원조 격이고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제시된 포용성장론 역시 포용을 규범적 가치로 삼는 정책적 시도다. 최근 들어서는 노동정책의 새 방향으로 포용이 강조되고 있다. 배제와 분리로 양극화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고려할 때, 노동 분야만큼 포용의 가치가 절실한 곳도 없으리라. 그러나 정작 포용이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정책의 단기적 효과에만 주목하는 실증주의 관성이 깊은 탓에 가치에 대한 논의는 형식적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가치는 정책의 지향을 담기도 하거니와 정책이 추구하는 바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행위자들의 윤리를 규정한다. 일찍이 윤리철학자 가넷은 가치가 행위자들의 행동 규범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맥락에 부합토록 그 내용이 구체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애매모호한 가치는 규범적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용은 어떠한가. 사전적으로는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 윤리규범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정책 가치로 삼기에는 손에 잡히는 게 별반 없다. 포용을 그나마 구체화하고 있는 정책이 포용성장이다. 이 대안적 성장론은 미국식 시장주의의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낙수경제를 기본으로 삼고 자본 자유화, 탈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그들만의 동의는 결국 상위 1%의 독식과 극심한 불평등만을 양산한 채 실패했다. 포용성장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를 포용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발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성장 과실의 공정한 배분을 전략으로 제시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분배공정을 토대로 하는 노동정책에도 좋은 참조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구체성은 떨어진다. 많은 이가 성장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이 필수적일 텐데, ‘포용적 고용창출 전략’이라 일컬을 만한 내용이 없다. 과실의 공정한 분배 역시, 일자리의 충분한 배분을 전제하는 개념이어서 허약하다. 자칫 ‘어떻게든 성장’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포용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화할 위험도 안고 있다. 강자의 배려에 초점을 두기에 약자를 수동적 존재에 가둔다. 언제라도 배려를 철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용은 강자의 자의성에 노출돼 있다. 신공화주의 이론가 페팃이 강조하듯, 지배자의 자의가 관철될 수 있는 상황은 실제 간섭이 없더라도 그 자체가 부자유(不自由)다. 흔히 드는 예로, 노예가 착한 주인의 선한 배려로 자유를 누린다 해도 그는 노예일 뿐이다. 그 자유가 일시적이고 타인의 자의적 배려에 의존할 뿐, 자기 주권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이다(‘신공화주의’ㆍ나남). 그렇기에 효과적 포용을 위해서는 약자를 재생산하는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노동정책에서는 원ㆍ하청구조를 극복할 대안 마련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포용은 정책으로만 구현되지 않는다. 행위자들이 스스로 포용을 행위규범으로 내면화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국 노사관계는 수많은 배제를 재생산해 왔다. 소수 독점 대기업과 대공장 노동조합만이 과실을 향유하는 담합 관계로 인해 소외노동계층의 처지는 날로 악화돼 왔다. 최근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당초의 노동존중 기조에서 벗어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 역시 가치 확신의 부재 때문이다. 포용은 결국 포용적 주체 형성의 문제다. 무엇보다 대기업엔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주도하는 파트너의 역할이, 노조엔 소외노동을 아우르는 연대의 구심체로서의 소임이 요청된다. 현실을 돌아보면 불가능한 기대처럼 보이지만, 포용이 수사를 넘기 위한 엄연한 조건이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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