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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세계 인구의 날에 출산율을 걱정하다니…

입력
2018.07.10 15:07
수정
2018.07.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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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은 뜨거웠다. 그 해 말 한국일보가 발표한 국내 10대 뉴스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 보자. 박종철 고문치사, 김만철 일가족 탈북, 6월 항쟁, 6ㆍ29선언, 노동자 대투쟁, 태풍 셀마, 오대양 집단자살, 김영삼ㆍ김대중 결별, KAL기 폭발 참사, 노태우 대통령 당선. 19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서 노태우 당선으로 끝난 뜨겁고 허망한 해였다.

한국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던 1987년 7월 11일, 지구 인구는 50억 명을 돌파했다. 풉! 50억이라니…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는 이미 지구 인구 75억 명을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1987년 당시 세계인들에게 50억이라는 숫자는 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들어본 가장 큰 숫자였다.) 오죽하면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구 인구 50억 명 돌파를 기념해서 7월 11일을 세계 인구의 날로 정했겠는가.

사실 50억이라는 숫자보다 증가 속도가 더 무서웠다. 2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1만2,000년 전 농사를 짓기 시작 할 때까지 기껏해야 500~800만 명에 불과했다. 세계 인구가 서울시 인구만도 못했던 것. 농업혁명은 인구를 꾸준히 증가시켰지만 5억~6억명을 넘기지 못했다. 인구 증가곡선은 기울기가 낮은 1차 함수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라는 변곡점을 맞았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1800년에 10억 명을 돌파하더니 1930년에는 20억, 1960년 30억, 1974년 40억, 그리고 1987년 7월 11일에 50억을 돌파한 것이다. 충격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1999년에 60억, 2011년 70억을 돌파할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냥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강조하셨다. “너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지구 인구가 두 배가 될 거야.” 그 이야기가 왜 그리 끔찍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아직 세상 걱정 따위는 없던 소년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미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지구 인구가 슬그머니 두 배를 넘어섰다. 193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은 자기 인생 동안 세계 인구가 세 배로 증가한 순간을 목격했다. 2023년이면 세계 인구가 80억을 돌파할 것이라고 하니 살면서 세계 인구가 네 배로 증가하는 장면을 목도하는 분들도 생기게 된다.

생각해 보면 1960년대만 해도 지구는 참 널널했다. 1960년대 세계 인구는 현재 중국과 인도 인구를 합한 것밖에 안 된다. 전 세계인을 중국과 인도에 몰아넣으면 나머지 지구는 텅 빈 상태다. 반대로 생각하면 참 끔찍한 상황인데 우리가 나름 잘살고 있는 것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환경에 정말로 창의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세계는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서 걱정인데 우리나라는 인구가 너무 더디게 느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소멸될 것 같아 걱정이다. 그냥 소멸되는 게 아니라 고통 속에 소멸된다는 게 문제다.

사회가 안정되려면 부양받는 인구보다는 부양하는 노동 인구가 더 많아야 한다. 인구수보다 중요한 게 분포다. 출생률은 한 해에 태어난 신생아 수를 그 해 인구로 나눈 것이다. 보통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수로 표시한다. 미래 예측에 도움이 안 된다. 인구 증가율도 마찬가지다. 평균 수명이 늘기도 하고 이민도 있기 때문이다. 인구 분포를 예측하려면 출생률이나 인구증가율보다는 합계출산율을 봐야 한다.

흔히 출산율이라고 간단히 부르는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수를 말한다. 2015년의 세계 평균 출산율은 2.42명이었다. 작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1.05명이었는데 올해는 출산율이 0.9명 대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선진국은 대개 1.8~2.0 정도다.)

우리나라는 이미 14세 이하의 어린이보다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더 많은 초고령사회다. 일찌감치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서 출산율을 높이려 애를 썼다. 지난 10년 간 저출산대책에 130조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신생아 수는 2008년 46만5,000명에서 2017년 35만 7,000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130조 원을 썼기 때문에 그나마 한 해 신생아 수가 지난 10년 사이에 11만 명밖에 줄지 않았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쓰였을 130조 원을 지난 10년 사이에 태어난 약 400만 명의 아이들에게 차라리 대놓고 나누어줬으면 어땠을까? 아이 신생아 한 명당 3,270만 원 꼴이다. 3,000만 원 준다고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를 낳은 부모는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은 세계 인구의 날이다. 인구 증가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있고 인구 분포의 급격한 변화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나라도 있다. 해결 방법은 한 가지다. 엄마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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