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일랜드 여성이 던도크에 있는 상점에서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던도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더블린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석한 한 여성이 비누방울을 불어 날리고 있다. 더블린=AP 연합뉴스

‘국가는 여성들이 가정에서의 역할을 통해 국가를 뒷받침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엄마들이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노동에 참여, 가정에서 그들의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일랜드 헌법 41조 2항)

지난 5월 낙태를 금지한 헌법 조항을 폐기하기로 결정한 아일랜드에서, 이번엔 성 역할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는 구시대적 헌법 조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아일랜드 국민들은 올해 말 대통령선거와 함께, 해당 조항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벌일 예정이다.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아일랜드 국영 RTE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 정부는 지난 5일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강조한 헌법 41조 2항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찰스 플래너건 법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올해는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정부가 41조 2항 삭제를 제안할 최적의 시기라 생각된다”며 “이 조항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진정한 성 평등을 달성하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를 약화시킨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1930년대 보수적인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는 41조 2항은 현재 시대에 뒤떨어진 대표적 조항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난해 아일랜드 인권 및 평등위원회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면담 조사에서 아일랜드 여성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과 편견이 그들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를 자주 드러냈다”며 “헌법 41조 2항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아일랜드 정부에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는 정부의 결정을 반기는 아일랜드 여성들의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폴 머래이는 트위터에 “1930년대 작성된 조항은 구시대적이며, 억압적”이라며 “국민투표를 통해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모든 일하는 부모 가정은 가사일을 나눠서 한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이다’ 등의 지지 글도 올라왔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국가 중 하나였지만, 가톨릭 교세가 약화되면서 최근 수십 년간 분위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2015년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올해 초에는 낙태 금지 조항을 폐지했다.

한편 아일랜드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 헌법 41조 2항 폐기 국민투표와 더불어 사문화된 헌법 조항(40조) 삭제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도 벌일 예정이다. 40조는 신성모독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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