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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중국제국’ 재생산의 비결

입력
2018.07.0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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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중국제국’이란 표현부터 해명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제국보다는 ‘중화제국’이란 표현을 주로 쓴다. 그럼에도 중국제국이라 한 까닭은 “하늘 밑 세상의 중심, 문명으로 빛나는 곳” 정도의 뜻인 중화(中華)가 중국이란 표현보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국수주의적이며 패권적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중국에 가면, 특히 일망무제로 펼쳐진 지평선을 몇 시간이고 마주할 때면 절로 밀쳐드는 목소리가 있다. 사막이든 황량한 벌판이든, 또 초원이나 각종 작물로 뒤덮인 들판이든 다 마찬가지다. 광활한 규모가 시시각각으로 내 안에 쌓이다 보면 문득문득 휩싸이게 되는, “2,000여 년, 그 긴 시간 동안 이 광대한 강역을 어떻게 중국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을까” 같은 물음이 그것이다.

비단 필자에게만 드는 의문은 아니다. 강토의 이 끝과 저 끝의 인문경관과 자연환경이 사뭇 다름에도, 흔히 55개 민족이 있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위적 구분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민족이 각자의 문화전통을 일구면서 살아왔음에도, 게다가 역사가 쌓일수록 영토가 계속 넓어져 지금은 유럽보다 1.8배 가량이나 됨에도, 중국이란 정체성을 그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온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듯싶다.

그 답의 하나는 ‘역사적인 것의 끊임없는 소환’이다. 동서의 많은 학자가 중국의 본령을 ‘문화중국’이라 규정했을 때, 그 실질은 중화로 대변되는 전통문화가 중국인의 현재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사뭇 핵심적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것 곧 역사가 교과서나 박물관 등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일상은 물론 개개인의 일상에 ‘살아 움직이면서’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인 중국이나 자유시장체제인 대만 할 것 없이 자신들의 국호 맨 앞자리를 ‘중화’라는, 배타적 선민의식이 강렬하게 투사된 표현이 차지하고 있기에 하는 말은 아니다. 국가정상 간 외교뿐 아니라 일상적 외교 현장에서 고전 속 문구를 의식적으로 즐겨 사용하기에 하는 말도 아니다. 첨단을 달리는 대도시나 낙후된 향촌, 꽤 오래 전부터 중국의 본거지였던 중원은 물론, 사막이나 고원 등이 드넓게 펼쳐진 주변부 어딜 가든 그러한 현상을 쉬이 접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중국은 자국 내 여행사업 활성화를 통해서도 내수 진작이 가능한 규모이다. 웬만한 대도시조차 국제선 공항청사보다 국내선 공항청사가 훨씬 북적이고 때론 규모가 더 큰 것도 이를 방증해준다. 중국 관영 CCTV에 중국 각지의 관광홍보 광고가 대거 방영되고 있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적지 않은 광고에서는 해당 지역의 역사인물과 연관된 내용이 주되게 홍보되곤 한다. 가령 공자 같이 중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의 고향임을 내세우는 식이다. 이백이나 두보, 소동파 같이 중국전통문학을 대표하는 인물과 인연 깊은 고장임을 내세울 때도 있다. 어떤 지역은 송대 초엽의 대표적 산문 ‘취옹정기’가 창작된 고을임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다른 지역은 전통 희곡계의 유명 작가 탕현조의 고향임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광고를 하는 까닭은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의 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 위주로 광고할 필요가 있다. 분명 광고주와 제작자들은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광고를 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이처럼 역사적 인물과 인연을 내세우는 방식이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지자체가 관광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역사적 인물과의 인연을 주되게 내세운다면 어떤 반응이 야기될까. 그것도 이순신 같이 대표급 인물이 아닌, 조선한문학사 같은 책에서 접할 수 있는 문인이나 산문 등을 내세운다면, 우리는 과연 역사 속 유명 문인이나 명작의 고장이라는 이유로 그곳을 기꺼이 찾고자 할지…

우리와 달리, 오늘을 사는 중국인에게는 역사적인 것이 큰 관심을 자아내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대상임이 분명하다. 중국 관영 CCTV의 대표적 예능 프로그램은 서바이벌 한시 경연 프로그램이다. 제시된 한자를 조합해 한시 구절을 완성한 후 이와 연관된 배경 지식을 다루는 이 프로그램에 14억 중국인이 수년째 열광하고 있다. 수백에 달하는 방송채널 어디를 틀어도 쉬이 접하게 되는 TV 드라마의 절대 다수는 사극이고, 시청률이 고공 행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사적인 것이 일상에서 함께 살아 움직이고 있기에 가능한 양상들이다.

그러니 우리도 중국처럼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함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목도되는 이런 현상이 어느 민족이나 국가이든 지니게 마련인 그들만의 특이성에 머물지 않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인 것을 생활세계에서 함께 살아 움직이게 함, 이것이 중국제국의 창출과 유지, 재생산의 문명장치 중 하나이기에 그렇다. 그것이 내면화되어 지금을 사는 중국인에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화적 DNA가 됐음에 주목하자는 제안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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