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영국 귀화는 꽤나 소란스러운 잡음을 낳았다.

‘나사의 회전’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가 1915년 7월 16일 미국 국적을 버리고 영국으로 귀화했다.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수수방관(윌슨의 ‘중립주의’)하는 데 반발한 거였다. 그에게 영국은 문화적 조국이었다.

제임스는 뉴욕의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일랜드인으로의 정체성보다는 범 유럽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더 컸던 듯하다. 사업에 성공한 조부 덕에 그는 부유한 환경 속에 성장했고, 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중시했던 종교철학자 아버지의 교육관 덕에 유년 시절부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수학했다. 그는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작가가 된 뒤, 1876년부터 근 40년간 런던에 거주하며 유럽의 작가들과 깊이 교유했다. 그런 그에게 1차대전 협상국(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고전은 곧 ‘조국’과 ‘동료’들의 시련이었고, 그 전쟁을 외면하는 미국의 태도는 의리와 책임의 방기였다.

당시 이미 세계적 문호로 꼽히던 그의 국적 포기는 반향도 컸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맹비난하는 기사를 쓰면서 상처 입은 국가적 자존심을 다독이기 위해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인은 미국인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변절자(defector)를 비난하고 냉소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미국은 결코 강제적으로 시민들을 붙잡는 나라는 아니다.” 제임스의 친구였던 이디스 워턴(Edith Wharton)은 다른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임스의 결정을 “그답지 않은 유치한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반면 영국의 타임스는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이 천재적 작가의 결정을 환영하며···.”

당시만 해도 다수의 미국인에게 영국은 선조들을 억압한 식민지 종주국이자 독립전쟁의 적국이었다. 백만장자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르(William Waldorf Astor)가 “미국적 삶이 싫어” 영국으로 귀화하자 뉴욕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그의 허수아비에 불을 지른 게 10여 년 전인 1899년 일이었다. 앞서 T.S 엘리엇도 1907년 영국으로 귀화했지만, 당시는 전시가 아니었고, 그는 미국 정부를 비난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영국 왕실의 국가공로훈장을 받고 한 달 뒤인 1916년 2월 별세했고, 미국은 14개월 뒤인 1917년 4월 참전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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