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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메허 바바(7.10)

입력
2018.07.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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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구루 '메허 바바'가 1925년 오늘 침묵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구루 '메허 바바'가 1925년 오늘 침묵하기 시작했다.

인도에 구루(Guru, 영적 스승)나 마하트마(위대한 영혼)가 많은 까닭은 힌두의 신들이 허다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신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그리스의 반신(半神)들처럼, 신의 자리까지 한껏 나아간(적어도 인정받는) 이들도 더러 생겨나는 것일 테다. 메허 바바(Meher Baba, 1894~1969)가 그런 존재여서 스스로를 인격화한 신, 즉 ‘아바타(avatar)’라 선언했고, 그를 인정한 이들이 인도 바깥에도 많았다.

인도 푸나(Poona)에서 태어나 대학(데칸 칼리지)에 입학할 무렵까지 그는 ‘메르완 이라니(Merwan S. Irani)‘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준수한 외모에 스포츠와 음악(노래)에 능했고, 지적인 데다 화술도 좋아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문학에도 재능이 있어 신문ㆍ잡지 등에 시를 발표하곤 했고, 대학 시절 인종ㆍ종교ㆍ신분을 초월한 신앙 교양 모임 ‘코스모폴리탄 클럽’을 결성해 이끌기도 했다.

19세 되던 1913년 어느 날 그는 군중들이 모인 자리에 우연히 갔다가 깨달음의 큰 스승으로 이름난 하즈라트 바바잔이란 이의 눈에 띄어 미간에 입맞춤을 받은 뒤 지복(至福)의 체험을 하고, 이후 8년여간 당대 최고의 구루 4명에게서 아바타로 인정받고, 신성의 지혜와 존재의 자각을 깨우친다. 1921년, 자신의 영적 사명을 깨달은 그는 스스로 ‘메허 바바(자비의 아버지)’로 거듭났다.

그는 자신을 교주나 스승으로 높이지 않아 제자를 두지 않았고, 대중을 신분과 빈부로 차별하지 않았으며, 일체의 종교적 의례를 배격했다. 그는 모든 존재가 신적 사랑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게 영적 지혜라고 가르쳤다. “재물을 구하거나 고통을 덜기 위해 나를 찾지 말라”고 했고, “네 행복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남을 행복하게 해 줄 길을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했다. 그는 따르는 이들에게 선교활동도 못 하게 했다.

메허 바바는 1925년 7월 10일 돌연 침묵을 선언, 69년 1월 31일 숨을 거둘 때까지 무려 43년7개월 동안 철저히 침묵했다. 말이 필요하면 필담으로, 말년에는 몸짓으로 대신했다. 독신이었던 그는 59년 자선재단을 설립, 학교와 병원을 세워 일체의 종교적 차별이나 비용 없이 가난한 이들을 가르치고 치료했다. 그는 신이라 해도 좋을 사람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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