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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멕시코의 좌파 트럼프

입력
2018.07.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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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개월 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정책과 관련, 멕시코보다 더 고통 받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최근 끝난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 세 명의 주요 후보가 경쟁했으나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준비를 제대로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국민은 좌파정당 연합후보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5)를 선택했다. 오브라도르는 풀네임의 머리글자를 따 ‘암로(AMLO)’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12월 1일 6년 임기를 시작하는 암로는 트럼프 대통령과 많은 의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멕시코 대선에서 대미 관계는 주요 이슈가 아니었고, 암로의 우선 순위도 아니었다. 그러나 앞으로 대미 관계는 다른 문제들보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암로와 트럼프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진지한 경제 민족주의자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알루미늄과 철강을 자급자족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암로는 멕시코가 옥수수, 밀, 쇠고기, 돼지고기, 목재 등을 자급자족 하기를 바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실용주의적 입장이면서 동시에 무역협정을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떠나진 않았다. 그럼에도 멕시코가 마약과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막지 않으면 NAFTA를 폐기할 수 있다고 압박한다. 반면 암로는 현 엔리케 페나 니에토 대통령이 추구하는 노선을 따라 미국 캐나다와 NAFTA 개정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민족주의 지도자에게 영합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뿌리 깊은 열정이 극단을 향하기도 한다. 물론 트럼프와 암로는 현실의 문제들에 관해 협상하고 수용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암로가 양국 관계를 새로운 의심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으리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무역, 이민, 마약, 안보, 그리고 지역 문제들은 양국 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암로는 이런 문제들에 관해 거의 100년 내 가장 적대적인 미국 대통령과 마주 할 수밖에 없다.

무역과 관세에 관한 암로의 구체적인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경제적 제안 중 많은 부분이 NAFTA 조항이나 정신에 위배된다.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책정하고 멕시코가 소비하는 농산물의 생산을 보장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NAFTA 조항은 물론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트럼프의 목표와도 어긋난다.

암로는 NAFTA를 지지하며 개정 협상을 계속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경우라도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의 최종 합의와 비준은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NAFTA를 탈퇴하고 멕시코산 자동차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끊임 없는 위협은 멕시코의 새 지도자를 불가피하게 자극할 것이다.이민은 아마도 훨씬 더 까다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미국 중심부에서 추방된 멕시코인과 멕시코를 횡단해 유입되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증가, 이민자 자녀의 구금 및 분리, 그리고 트럼프의 외교적 압박 등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니에토 대통령은 대선이 한창이던 무렵 멕시코시티로 초청한 트럼프에게 아첨하며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이제 암로는 트럼프에게 맞섬으로써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니에토는 양국 간 의제로 제기된 모든 문제에 통합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이민을 협상안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결국 하지 않았다. 암로가 미국과 얽힌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게 되면 니에토가 감히 하지 못했던 것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멕시코는 과테말라 남쪽 국경에 대한 통제를 풀거나 미국 당국이 멕시코 국적을 확증하지 않는 한 강제 송환을 거부하는 등 이민에 관한 여러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는 지지층의 이민자 적대감을 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도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의 주들이 의학 및 레크리에이션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암로는 마약에 대해 보수적이며 합법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미국과 이전 수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트럼프에 대한 멕시코 국민들의 반감과 전임 지도자들이 저지른 은밀하고 불법적인 마약 정책에 대한 분노는 양국의 협력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미국과 멕시코가 다룰 의제에는 이민과 마약 외에도 테러 척결,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와 같은 지역 위기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암로는 이민과 마약 문제에 대해 협력 기조를 유지하면서 멕시코의 전통적이고 오래된 지역 외교에 대한 간섭 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암로의 승리는 현 멕시코 정부의 무능과 신뢰 상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 덕분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2016년 선택의 결과에 직면해야 하듯이, 이제 멕시코인들은 그들의 선택의 결과에 직면해야 한다.

호르헤 G. 카스타냐다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ㆍ멕시코 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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