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관 후보 3인 임명제청에서 ‘서오남’과 ‘노여정’의 엇갈린 운명이 화제가 됐다. 역대 대다수였던 ‘서울대ㆍ50대ㆍ남성’ 대신 ‘노동ㆍ여성ㆍ정통법관’ 출신 인사 각 1명씩 제청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코드가 비슷한 대법원장의 결단으로 주류였던 서오남은 ‘비주류’, 노여정은 개혁 세력이 된 셈이다.

따지고 보니, 나도 언론계의 ‘서오남’이다. 특파원으로 3년이나 워싱턴에서 일했기 때문일까. 한국이 동북아 갈등구도에서 생존하려면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개혁 세력보다는 반대 쪽에 가까운 프로필이다.

그래서 주변에 적폐성 발언자들이 많다. 친구ㆍ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지만 대부분 ‘서오남’ 성향이다. 각자 특성에 따라 ‘서강남’(서울대ㆍ강남ㆍ남자), 서삼남(서울대ㆍ삼성ㆍ남자), 워사남(워싱턴ㆍ40대ㆍ남자) 등으로 조금씩 다를 뿐이다. 며칠 전 모처럼 서오남 성향자들이 다수 참석한 저녁 모임에 갔다. ‘소폭’이 한 두잔 돈 뒤, 시국상황과 대통령이 단번에 안주가 되어버린 당시 대화를 각색해 소개한다.

용산으로 이사를 가서 ‘서용남’이 된 분이 말했다. “과거 캐는 것만큼 쉬운 건 없다. 이 정부는 과거만 캔다. 정작 어렵고 중요한 건 미래인데, 그런 고민은 전혀 없다.” 서강남이 거들었다. 불만은 경제, 특히 주52시간 근무제였다. “일하지 말고 빨리 집에 가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좋더라. 그런데 정말 잘하는 걸까. 예전 한국 기업이 왜 일본을 이기게 됐는지 조사했더니, 오래 일한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더라. 조사를 맡았던 외국 컨설팅업체가 ‘이렇게 오래 일하는데 성과가 이거뿐이냐’고 놀랄 정도였지.” 또 “이러다가 한번 미끄러지면 거기서 끝이야. 소니, 노키아가 삼성에 1등 빼앗긴 뒤 일어나지 못하잖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콩보다 두부가 싸다’며 전기료 인상을 시사한 한전 사장도 안주가 됐다. 서삼남이 말했다. “한국 제조업 경쟁력 중 하나가 질 좋고 값싼 전기인 거 모르지. 미국과 일본은 가정용 전압이 110V인데, 전기 질 높이고 송전손실 줄이려고 1970년대 220V로 바꾼 덕택이야. 원전 줄이고 전기료 올린다니, 어떻게 하는 것마다 우리 강점만 없애는 쪽인지 몰라.”

남북관계도 취급됐다. 서오남은 ”협상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것이고, 그게 정은이가 원했던 건데 정확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군. 한국이 얻은 게 뭐냐”고 말했다. 또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싱가포르 회담에도 불구, 북한 위협이 바뀐 게 없다고 한국 신용등급 그대로 놔둔 거 모두 알지? 삼성바이로직스를 분식회계로 혼내주려는 모양인데 ‘회담 몇 번으로 평화가 온 건 아니다’는 무디스 논리대로라면 정부 정책도 ‘분식’(粉飾)인 거 아냐”라고 반쯤 취해 말했다. 그러자 ‘워사남’이 합류했다. “우리 회사가 겁내는 게 뭔지 알아요. 공정위, 국민연금 동원해서 압박하다가 북한에 투자하라고 하는 겁니다. 중국에서 당한 거 뻔히 봤는데, 더 심한 북한에는 절대 못 갑니다.”

성토는 그렇게 2시간 더 이어졌다. 하지만 밤 10시가 다가서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만 끝내고 집에 가자”고 말했다. 또 “이리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바뀐 세상에 잘 적응하자”며 위로했다. 하지만 누군가 집권 1년이 지났는데도 권력ㆍ행정기관이 적폐적발에 매달리는 건 문제라고 말하자 일제히 동의했다. 또 누군가 ‘한계적폐체감 법칙’ 때문에 결국 그런 일들은 줄어들 거라고 예상하자, 서로 웃고 말았다.

그런데 4대강 감사, 기무사 문건, 부모 자식 모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대한항공 갑질 수사 등 요즘 나온 한계적폐에 대한 일반인들의 분노는 정말 체감(遞減) 중일까.

조철환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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