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오른쪽) 시인과 부인 강순희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지평이다./틀림없는 지평이다.”(‘자서(自序)’ 일부)

‘다다를 수 없는 저 너머’를 꿈꾸며 평생을 산 이,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89)씨의 시집 ‘지평’은 그렇게 시작한다. 김 시인이 1955년 일본에서 낸 첫 시집이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됐다. 63년 전에 나온 시집을 새삼 읽는 건, 시대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다. 김 시인이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의 도래, 재일 조선인 사회의 혼돈 등을 목격하고 1950년부터 쓴 초기 시들이 실렸다. “하지만 난 여기 있다/바다를 사이에 두고 미 제국주의의 발판인 일본에 있다/제트기가 날아오르고 탄환이 만들어지는/전쟁공범자인 일본 땅에 있다”(‘품’ 일부), “조국을 망치는 전쟁에/고철을 주우며 거드는 마음으로 울며불며 거들지”(‘재일조선인’ 일부). 그 시절 조국을 그리며 재일 조선인으로 사는 건 그렇게 ‘철저히 힘 없음’이었다.

김 시인은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 고향인 제주에서 자랐다. 일본 천왕을 신으로 받든 군국 소년이었던 그는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했다. 1948년 제주 4∙3때는 빨치산 연락책으로 가담했다. “돌아오지 마라. 우리 눈앞에서 죽지 마라. 부모보다 먼저 죽지 마라. 이게 운명이니 일본에서 살아라.” 체포를 피해 1949년 외아들을 일본으로 밀항 보내면서 김 시인의 부모는 열규했다. 첫 시집이 나올 무렵 김 시인은 심장병을 앓았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께. 뵈옵지 못할 시집을 일본에서 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이 시집을 축복해주실 부모님께 철모리 자라난 시종이가 먼 곳 타국에서 이 책을 드리옵니다.” 병상에서 받아 든 초판 시집에 김 시인이 세로로 눌러 쓴 글이다. 시집은 끝내 부모 손에 전해지지 못했다. ‘빨갱이’ 김 시인은 김대중 정부의 특별 조치로 1998년에서야 귀국해 부모의 묘를 찾았다.

김 시인은 재일 조선인 거주지인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근근이 살았다. 김일성 우상화를 비판해 재일조선인총연합회와 불화하는 등 섬 속의 섬처럼 지냈다. 4∙3 가담 전력을 비롯한 개인사를 공개한 건 2000년 들어서다. “나는 겨우 스물여섯 해를 살았을 뿐이다/그런 내가 벙어리매미의 분노를 알게 되기까지/100년은 더 걸린 듯한 기분이 든다./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야/나는 이런 기분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으려나.” 이렇게 맺는 ‘먼 날’은 외로움의 시다.

“아버지와 자식을 갈라놓고/엄마와 나를 가른/나와 나를 가른/‘38선’이여,/당신을 그저 종이 위의 선으로 되돌려주려 한다”(마지막 수록 시 ‘당신은 이제 나를 지시할 수 없다’ 일부) 김 시인은 일본이 대국으로 크는 것을 지켜 보며 절단 난 남과 북을 애통해했다. 분단 종식을 목격하는 게 그의 마지막 소원이겠으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김 시인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아사히신문 산문상 등을 비롯한 문학상을 여러 번 받았다. 얼마 전엔 12권짜리 ‘김시종 컬렉션’이 일본에서 나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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