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태풍 안전지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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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한반도를 비켜 지나갔다. 다행히 큰 피해를 남기지 않았으나, 사실 한국은 태풍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이동속도가 눈에 띄게 감소하고, 태풍이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점차 극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달리는 열차를 탈선시켜 버리는 ‘슈퍼태풍’ 상륙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태풍은 중심의 최대풍속이 초속 17m 이상인 열대성 저기압이다. 북반구에선 보통 북위 5~20도,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인 바다에서 발달한다. 태풍의 강도를 결정하는 건 수증기다. 바다에서 증발한 수분이 일정 고도에서 빗방울 등 액체상태로 바뀔 때 방출되는 열이 바로 태풍의 에너지가 된다. 따라서 수증기를 많이 머금을수록 태풍의 위력은 커진다. 저위도에서 생긴 태풍이 북으로 오르다가 소멸하는 건 중위도 지역의 해수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수증기 증발이 적고, 그로 인해 에너지(수증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서다.

그러나 해수 온도가 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위도 지역에서도 증발하는 수증기량이 많아지면서 태풍이 오히려 더 세력을 키울 수 있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1937년 이후 현재까지 한반도를 지나친 태풍 가운데 최대순간풍속이 센 상위 태풍 10개 중 7개가 2000년 이후 나타났다. 한반도 해역 해수 온도의 급상승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결과를 보면 1968~2015년 사이 국내 인근 바다의 표층 수온은 1.11도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표층 수온은 0.43도 상승했다. 특히 1991~2010년에만 0.81도가 올라 전 세계 평균 속도보다 4배 이상 빨랐다.

앞으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달 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949~2016년 사이 한반도가 위치한 북태평양 서쪽 지역의 태풍 이동 속도가 2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따졌을 때 최고치다. 호주가 속한 남서태평양 지역에선 태풍의 이동속도가 15% 감소했다. 북대서양(6%), 북동태평양(4%), 서인도양(4%) 등 나머지 지역도 줄긴 했으나 그 폭이 훨씬 작았다. 연구진은 “지구온난화로 적도와 극지방 간의 에너지 격차가 줄어들면서 태풍의 이동속도 역시 느려졌다”고 설명했다.

적도 부근은 태양열을 많이 받아 에너지가 많지만, 극지방은 태양열을 적게 받아 에너지가 적다. 저위도의 열(에너지)을 극지방 등 고위도로 옮겨 에너지 불균형 상태를 균형으로 만들어주는 게 태풍의 원래 역할인데, 저위도와 고위도 간 에너지 격차가 줄면서 태풍이 열을 재빨리 전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문일주 제주대 해양산업ㆍ경찰학과 교수는 “태풍의 이동속도가 줄었다는 건 특정 지역에 오래 머물며 비를 퍼부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라며 “지구온난화로 수증기 공급까지 원활히 이뤄질 경우 인명ㆍ재산 피해 정도는 지금보다 훨씬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태풍이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치가 점차 극 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NOAA 연구진이 1980~2013년 사이 태풍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태풍이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북반구에선 10년마다 53㎞씩, 남반구에선 62㎞씩 극 쪽으로 이동했다. 해당 연구결과는 201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됐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 소장으로 있는 문 교수의 연구도 비슷하다. 1975~2012년까지 38년을 19년씩 전ㆍ후반기로 나눠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슈퍼태풍 빈도를 조사했더니 슈퍼태풍 발생 횟수가 전반기(1975~1992년) 연평균 2.9회에서 후반기(1993~2012년) 연평균 4.4회로 늘었고, 이 기간 슈퍼태풍의 최고 북상 위도 역시 전반기 북위 28도에서 후반기 34도로 6도 북상했다. 한반도는 북위 33~43도에 위치해 있다. 슈퍼태풍이 한반도 코앞까지 치고 올라온 셈이다.

슈퍼태풍은 중심 최대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태풍이다. 달리는 열차를 탈선시키고, 아파트 거실의 두꺼운 유리창도 깨뜨릴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물에 잠기게 한 카트리나가 대표적인 슈퍼태풍이다. 카트리나가 상륙할 당시 최대풍속은 초속 78m였다. 국내에 상륙한 태풍 중 최대 풍속이 가장 센 것은 2003년 태풍 매미(최대풍속 초속 60m)다. 문 교수는 “슈퍼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며 “슈퍼태풍 등 보다 강력한 기후재해를 고려해 방파제ㆍ건물 등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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