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

주요 상권 건물 매입해 싼값 임대
주변 상가 임대료까지 안정화돼
임대료 상승 주범격 프랜차이즈
서촌ㆍ성수동 등 입점 제한 검토
비싼 임대ㆍ매출 부진 지하철 상가
위약금 없애고 관리비 인하 추진
임대차 문제 근본적 해결 위해선
민선 시장에 상한선 지정 권한을
윤준병(왼쪽) 서울시 행정부시장은 “영세 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임대기간과 임대료를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법제화하는 게 임대차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임대료 상승을 막기 위해 ‘장기안심상가’ ‘임차인 상가매입비 지원’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서울의 지하 상권은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민간 상가에 비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이 컸기 때문이다. 그랬던 지하 상권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불황으로 매출은 급감하는데 전대(轉貸)로 얽히고 설킨 억대 권리금(지하도 상가)과 공개 경쟁입찰 과정에서 급속히 오른 임대료(지하철 상가) 등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권리금 환수와 임대료 조정 등을 놓고 지하도ㆍ지하철 상가 상인들과 소유주인 서울시 간 갈등도 심각하다.

서울에 지하도 상가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민자 건설사들이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임대료를 받고 상가를 분양해 운영하다 96년 서울시에 기부채납 했다. 서울시 소유로 바뀐 뒤에도 상인들 사이에선 권리금을 주고받는 임차권 거래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목 좋은 곳의 권리금은 수억 원에 달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지하도 상가 점포 수는 명동 을지로 강남 영등포 등 25개 권역 2,788개. 그간 임차인 손 바뀜도 있었지만 4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가게를 꾸려온 상인도 많다.

1년 전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시가 지하도 상가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이다.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허용해 온 기존 조례가 상위법인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위반이라는 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 때문이었다. 공공재산인 지하도 상가 임차권을 양도ㆍ양수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감사원도 서울시에 문제가 된 조례를 빨리 고치지 않는 이유를 따져 물었다.

80년대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지하철 상가(1,872개)는 개별 공개 경쟁입찰을 하다 보니 지하도 상가에 비해 임대료가 비싼 편이다. 모바일을 이용한 온라인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고객도 갈수록 줄고 있다. 임대료는 비싼데 매출은 떨어지니 버틸 재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매장을 내놓고 싶어도 계약기간이 남아 있으면 서울시에 수천 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민간 상권도 활기를 잃어가긴 마찬가지다. 일부 영업이 잘 되는 상권에서는 임차인들이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임대료 갈등 끝에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궁중족발’ 사건도 벌어졌다. ‘행정의 달인’으로 통하는 윤준병(57)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4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만나 임대차 문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지하도 상가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금지하는 조례 개정안은 어떻게 됐나.

“서울시의회가 지난달 29일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하도 상가는 서울시 공유재산이다. 공공상가의 경우 임대료가 저렴한 대신 특정 개인이 장기간 임차할 수 없게 돼 있다. 여러 사람이 나눠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원칙이다. 공유재산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허용하는 것은 불법 권리금을 발생시키고 사회적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지하도 상가 상인들은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허용해 온 서울시의 기존 조례를 믿고 거액의 빚을 내어 점포 임차권을 샀다고 주장한다. 불황으로 장사가 안 되는 상황에서 권리금을 못 받고 나가면 큰 피해가 예상되는데.

“서울시가 1988년 조례를 통해 임차권의 양도ㆍ양수를 허용한 것은 명의 변경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점포주 요청에 따른 것이지 임차권의 매매를 허용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지하도 상가를 기부채납 받기 전에 불법 전대가 많이 이뤄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임대 기간 중 양도ㆍ양수를 부분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서울시는 권리금을 인정한 적이 없고, 상인들도 임차권 양도 때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왔다. 상가임대차보호법 또한 공유재산의 경우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공유재산법의 취지는 이해가 되나, 그간 지하 상권을 키워 온 상인들의 기여분도 어느 정도 인정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이다. 2008년부터 25개 권역별로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지하도 상가 관리법인을 정하고 있는데, 입찰 조건에 ‘임차인 승계’를 담아 기존 상인들이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한편 시설 개보수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매출 부진으로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관리비를 인하하는 방안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도 상가는 공공재산이어서 민간 상가와는 법적 지위가 다르겠지만, 상인들의 권리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지 않나.

“민간 상가의 경우 건물주와 임차인 간 권리금 분쟁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임차인 권리금을 일정 부분 보호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된다면, 서울시도 여기에 맞춰 조례 개정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지하 상권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특히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지하철 상가 상인들은 매출이 떨어지는데도 비싼 위약금 탓에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임대료 및 위약금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는지, 지하 상권 활성화 대책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하철 상가 상인들이 비싼 임대료와 위약금 문제를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위약금의 경우 보통 수천 만원에 달해 큰 부담이 된다. 서울시 입장에선 공공재산인 지하 상권을 잘 관리하고 수익을 올려야겠지만, 영세 상인을 보호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경기 침체로 장사가 안 되는 걸 본인 귀책사유로 판단해 거액의 위약금을 요구하는 건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조만간 위약금을 없애는 방향으로 지하철 상가 관리규정을 고칠 계획이다. 유동인구를 늘려줄 대형 서점을 유치하고 지상 공간과 연계한 벼룩시장을 개설하는 등 지하 상권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민간 상권의 임대차 문제도 심각하다. 서울시는 도심 재생의 걸림돌 중 하나인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건물주와 임차인 간 상생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는 것으로 아는데.

“임대차 문제가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성을 더해가는 게 사실이다. 서울시는 201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내놓았고 올해에도 관련 분야에 26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상가 건물을 매입해 저렴한 임대료로 운영하는 ‘앵커상가’, 임차인들이 건물을 직접 매입해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임차인 상가매입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공익을 우선하는 앵커상가가 생기면 주변 상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촌 성수동 등의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해 프랜차이즈 점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색 있는 상권에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들어오면 임대료가 치솟아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앵커상가가 많이 들어서면 갈등 구조인 임대차 문화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될 성싶다.

“서울시 소유인 동대문 유어스 상가가 대표적인 앵커상가다. 서울시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책정하면 주변 상가들이 무턱대고 임대료를 올리기가 쉽지 않고 젠트리피케이션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 시내 주요 상권에 들어선 앵커상가들이 국내 임대차 문화를 바꾸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리라 확신한다.”

-영세 상인이 임대료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산하 구청들이 ‘장기안심상가’라는 제도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안다.

“건물주가 임차인들과 5년 이상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기로 협약하면 서울시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는 게 장기안심상가 사업이다. 지난 2년간 259건의 상생협약이 체결됐고 77개 장기안심상가가 조성됐다. 2020년까지 200개 이상의 장기안심상가를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임대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미국 뉴욕처럼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민선 시장에게 임대료 상한선을 지정하는 권한을 줘야 한다. 예를 들면 시장이 조례를 통해 상권이 위축된 지역은 1~2%, 상권이 활성화된 지역은 4~5% 등 상권 특성을 감안해 임대료 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정한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 연 5% 범위 내에서 지역 여건에 맞게 조정한다는 의미다.”

-임대차 문제를 서울시 차원에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임대차 문제의 핵심은 임대기간과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임차인의 지위가 불안정하고 건물주가 자본의 몫을 많이 가져가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 영세 상인들이 안심하고 영업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도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하는 공정경제가 정착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

인터뷰=고재학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

공무원 하면 ‘복지부동’ ‘무사안일’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적폐청산 영향인지 공직 사회에 몸 사리는 풍토가 더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윤 부시장에겐 늘 ‘소신 있는 공직자’ ‘원칙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급 이상 간부 상당수의 사표를 수리하면서도 윤 부시장을 유임시킨 건 요즘 공직자 중에는 보기 드문 그의 강직함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부시장은 행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해 서울시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교통기획관, 상수도사업본부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두루 거친 행정 전문가다. ‘구의역 김군 사고’ 이후 박원순 시장이 그를 ‘구원투수’로 다시 불러들이면서 서울시 최초로 도시교통본부장 자리에 두 번 올라 화제가 됐다.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