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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아이 낳으라는 말, 언제까지···

입력
2018.07.0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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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가끔 저출산을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강의 주최측 구성원의 특징이 주로 장노년층 남성이고 사회적ㆍ경제적 지위가 있을 때는 거의 예외 없이 하는 인사말이 있다. “우리 며느리(딸)에게 애 셋은 나으라고 제가 늘 이야기해요.” “누가 주례 부탁을 하면 애 셋 이상 낳겠다는 약속 하지 않으면 주례 서주지 않겠다고 해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청중이 ‘하하하!’ 웃어주면서 장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난감한 상황이다.

청년세대는 여러모로 살기 힘들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산재해 있다. 일자리, 주거, 돌봄ㆍ교육 비용, 일ㆍ생활 균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 등이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뿌리가 남성 중심으로 대를 이어 살아온 가부장제다. 가문의 혈통을 잇기 위해 낳으라면 낳아야 했다. 아들을 낳아야 했다. 낳지 못하면 ‘씨받이’라도 감수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행태가 양반계층에 한정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회적 규범과 가치가 됐다. 물론 규범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배경과 맥락이 있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과 대중은 규범과 가치의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왜 그렇지?”라는 문제제기 없이 자연스럽게 규범과 가치에 순응한다.

그런데 규범과 가치를 만들어낸 배경과 맥락은 과정으로서 변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멈춰있지 않다. 관계를 갖게 되면 거의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임신을 피할 수 있는 보편적 피임수단의 보급은 그러한 변화의 대표적 예다. 이외에도 출산과 관련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화 과정을 한국사회는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부모가 되어 살았던 과정과 자녀가 부모가 되어 살아가는 과정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앞으로 태어나고 자라날 세대가 살아가게 될 과정에 대해서는 현기증이 날만큼 높은 수준의 변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압축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압축성장이 압축성숙은 아니다.” 고도의 압축성장은 너무 다른 삶의 경험을 갖고 있는 세대들이 하나의 삶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압축적으로 충돌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영유아기, 아동ㆍ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 분류가 무색할 정도로 각 생애주기 내에서 너무 다르고 이질적인 삶의 양상이 전개된다. 20대와 30대를 하나의 청년세대로 묶지 못할 정도로 다른 경험 이야기를 하고, 세대 간 다른 관심과 이해가 충돌하는 양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높은 수준의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ㆍ집단의 존재로 인하여 나와 우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 자체에도 감사할 줄 아는 ‘실존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압축적 성숙’이 필요하다.

저출산이 진정 걱정이라면, 여성과 청년세대가 왜 출산을 기피하는지 역지사지의 태도를, 사회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여성과 청년세대의 변화하는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이들의 관점에서 삶의 질 수준을 높여가는 정책적 전환을 기성세대가 먼저 요구해야 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 경험에 집착하지 말자. 내가 몰랐던, 나에게 낯선 변화를 왜 여성과 청년이 경험하고 있으며 또한 원하는지 진지하게 바라보자. 그렇다면 다시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아이 몇 이상 낳으라는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여성과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이 땅의 어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압축적 성숙을 시도해보자!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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