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PCA 남중국해 판결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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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영유권 주장 근거 없어졌지만
싱가포르ㆍ인니 등 아세안 선진국
소극 대응에 성과 없이 세월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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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림팩에 베트남 정식 참가
中 군사기지화에 첫 공동대응
격년으로 열리는 2018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칠레, 페루, 프랑스, 캐나다 해군 소속의 전함들이 지난달 24일 훈련 해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달 27일부터 한국을 포함, 26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군사훈련인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ㆍ림팩)이 5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베트남 정부는 자국 해군의 림팩 참가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훈련에 베트남이 과거 ‘옵서버(참관인)’ 자격으로 두 차례 참여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참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VN익스프레스는 베트남의 첫 참가 외에도 “중국을 빼고 베트남을 훈련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 5월 말 남중국해 군사화를 이유로 중국군의 림팩 초청을 취소했다.

이기고도 진 동남아

이번 훈련은 중국이 빠진 상황에서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들이 모두 참가, 자연스럽게 대중국 전선이 형성됐다. 베트남이 림팩에 처음 참가한 데 이어 10개 아세안 회원국 중 바다가 없는 라오스와 전통적인 중국 우방으로 분류되는 캄보디아, 미얀마를 제외한 7개국이 모두 참가했다.

국제분쟁을 중재하는 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6년 7월 12일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첫 중재 결정을 통해 중국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이 해상경계선을 중국이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남중국해에서의 주권 활동 근거가 사라졌던 셈이다. 하지만 그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 후에도 동남아 국가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림팩에 앞서 크리스토퍼 로건 미 국방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대변인도 “남중국해 분쟁 해역을 군사기지화하고 있는 중국의 행동에 대항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세안 관계자는 “아세안 외교 장관들은 역내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공동 성명을 통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해 실제 공동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상설중재재판소 결정 이후에도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중국의 위협에 노출된 이들이 미국 주도의 훈련에 참가했다”고 분석했다.

中 영향력 지속 확대

PCA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세안에 구심점 역할을 하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내 가장 선진국인 싱가포르와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는 국제 문제에 있어 중립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등 다른 나라들도 경제성장 정책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었던 만큼 큰손인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모하마드 사부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은 지난달 샹글리라 대화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에게 “미국과 중국 전함이 말레이 해역을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지만 그들의 힘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며 “남중국해에 세계 강대국들의 전투함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힌 게 남중국해와 관련한 거의 유일한 입장이다.

전통 우방인 미국과 거리를 두는 대신 ‘친중 행보’를 보이며 중국의 군사기지화 작업을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다.

아세안 차원에서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분쟁 당사국들이 중국의 인공섬 건설과 군사 시설화 등 영유권 강화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했지만 캄보디아, 라오스 등 친중 회원국들의 반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중국은 분쟁해역에 만든 군사기지에 전파 교란 장치와 미사일을 설치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전략폭격기(훙-6K)를 투입, 이착륙 훈련까지 벌였다.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PCA 판결 후 2년 동안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됐다는 뜻이다.

‘싸움 구경꾼’ 유지하던 美
中의 노골적 장악 시도에
그나마 베트남과 준동맹 과시
결국 美中 양강 싸움

하지만 이 같은 싸움도 결국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 속에서 일어나는 ‘국지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간 해양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 경제성장을 해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이 움직이면서 두 나라가 충돌했고, 그 지점이 남중국해라는 것이다.

올 1월 매티스 장관이 발표한 미국 국가방위전략서(NDS)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9ㆍ11 테러 이후 국제 테러리즘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미국의 방위 전략을 중국ㆍ러시아와의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후 그는 인도와 베트남을 연속 방문 하면서 동남아와의 관계 개선에 직접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소원해진 동남아와의 관계 회복 내지는 해당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 목적이다.

실제 지난해 말 미국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실망은 극에 달하기도 했다.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이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나는 매우 훌륭한 중재자”라고 밝힌 대목 탓이었다. 당시 역내 뜨거운 감자이던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과의 분쟁에서 미국이 당사자와 같은 자세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은 ‘미국은 구경꾼으로 있겠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초 매티스 장관 방문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3월에는 베트남전 종전 43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항공모함이 필리핀을 거쳐 중부 다낭에 기항했다. 중국의 노골적인 남중국해 장악 시도에 미국이 베트남과의 준동맹 수준의 군사 대응 태세를 과시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훈련을 가졌고, 훈련 도중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군복 차림으로 해상열병식을 사열하며 강한 해군 건설을 역설하면서 남중해 긴장은 고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특임교수는 “미국 항모의 베트남 기항과 중국의 역대급 해상 훈련은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지난 2년간 첨예해진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앞으로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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