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에서 규제혁신 토론회를 주재하며 참석자의 발표를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묘하게 닮아간다. 청와대가 규제개혁을 외치며 공직사회를 혼쭐내지만 왠지 참신함은 떨어진다. 애써 뇌리에서 지우려 해도 과거의 장면이 겹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답답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두 번째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돌연 취소하며 토로한 말이다. 깊은 고심이 묻어나는 절제된 말투다.

4년 전에는 훨씬 격했다. 2014년 8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변명을 늘어놓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5개월 만에 규제개혁장관회의를 다시 열면서 공개할 청사진에 관심이 쏠렸을 때다. 박 대통령은 온갖 질책으로 관료집단을 다그치며 회의를 연기하는 충격요법을 썼다. 들볶다 못해 ‘규제 단두대’, ‘암 덩어리’라는 섬뜩한 용어까지 동원했지만 끝내 말의 성찬에 그쳤다.

10년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2008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현장에 가서 정책을 만들라”며 고질적인 탁상행정에 일침을 날렸다. ‘대불공단 전봇대’ 사례와 ‘손톱 밑 가시’라는 표현은 정권 내내 적폐의 상징으로 각인됐지만 그뿐이었다.

규제개혁은 정부가 매번 부르짖은 최우선 국정과제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개혁의 깃발을 든 이래 20년이 지났건만 어떤 규제가 얼마나 바뀌어 우리 삶이 달라졌는지 도통 와 닿지 않는다. 대신 대통령이 공무원들을 꾸짖는 장면을 지켜보며 잠시 후련함을 느꼈던 기억만 생생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사방에 얽혀있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분통이 터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늘 이런 식이었다. 행동은 뒷전이고 말이 앞서면서 뜬구름 잡기 일쑤였다. 그럴듯한 훈수만 난무하는 통에 부처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헛발질을 하는 사이 국회에서 최근 의미 있는 시도가 있었다. 납품기한을 맞추지 못한 방산업체는 ‘지체상금’이란 벌금을 내야 한다. 언뜻 당연하지만, 이유 불문하고 무한대로 책임을 묻다 보니 8,800억원에 계약해 지체상금으로 8,000억원을 물리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벌금을 사업총액의 10%로 제한하는 외국과 달리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당사자들은 수년 전부터 죽겠다고 아우성 댔지만 청와대와 관련 부처는 방위산업 육성만 입버릇처럼 되뇌며 현실을 외면해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건 야당이었다. 정부와 업체의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불러 두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국회가 판을 깔자 묵은 한을 풀 듯 그간의 고충과 원성이 여과 없이 쏟아졌고, 십자포화를 맞은 정부는 마지못해 시행령을 바꿔 이달부터 지체상금에 상한을 두기로 했다. 반면 걸핏하면 민생경제를 강조하던 여당 의원들은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야당이 주도해 규제를 개혁하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국정과제마저 찬밥신세다. ‘우버’로 알려진 승차공유 서비스는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주요사업이다. 유연근무제 확산에 맞춰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각광을 받았다. 시장규모가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 외 영업은 불법이라며 택시업계가 강력 반발하면서 신생업체들은 하나 둘 문을 닫을 처지다. 정부는 어설픈 중재로 신망을 잃고, 여당은 뾰족한 해결책 없이 관망하면서 양측의 갈등만 커지고 있다. 보다못해 한 야당 의원이 불씨를 살리려 나섰지만 정부여당의 지원사격이 시원치 않다 보니 뿌리깊은 규제의 저항에 막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취소하자 “부처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대한 경고다”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4년 전 새누리당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 뜻과 달리 정부의 개혁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비아냥댄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제 총대를 멜 때다. 그래야 일상 깊숙이 똬리를 튼 규제를 조금이나마 도려낼 수 있다.

김광수 정치부 차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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