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경제체제를 지향해야 할까? 다소 뜬금 없는 질문이지만 조세, 사회보장, 노동, 규제 등의 현안 해결을 위해선 이 질문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경제체제에 정답이란 없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국민 공감이 있어야 나아갈 힘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방향에 대한 공감대 없이 현안만 해결하려 하니 문제 해결은 지연되고 갈등만 높아가고 있다.

경제체제란 경제의 세 주체인 정부, 개인, 기업 간의 제도화된 관계로서, 주로 정부 역할의 강도를 의미한다. 정부와 개인의 관계는 주로 재정에서 나타난다. 소득의 50%를 국가에 내면서 다양한 무상혜택을 전 국민이 누리는 북유럽 같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소득의 25% 정도만 내면서 선별적 복지를 펼치는 미국 같은 유형도 있다. 선택은 우리 몫이다.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016년 기준 26%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34%이다. 향후 국민부담률을 얼마나 어느 정도의 속도로 올릴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규제와 지원으로 나타난다.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규제가 모두 약한 미국 유형이 있는가 하면, 한국은 개발시대의 유산으로 지원과 규제가 모두 강한 편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에서 한국은 27위인데 기업여건 관련 정부효율성 항목만 보면 이보다 낮은 47위다. 시장과 기업 관련 정부 역할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업과 개인의 관계는 주로 노동시장에서 구현된다. 노조에 가입된 10%의 노동자와 90%의 미가입 노동자는 기업에 대한 힘의 균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각종 법규로 기업과 노동자의 역학관계를 결정한다. 90%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성에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10%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 경제체제는 동서냉전 속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수렴했다. 당시 서방 선진국에선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형이 지배했다. 1970년대초 케인지언도 이에 속한다. 복지국가를 목표로 국가가 규제와 재정으로 시장과 개인의 삶에 깊이 개입했다. 반면 사회의 역동성이 약화하고 국가기능의 비대화를 초래했다. 영국은 1976년 IMF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1970년대 말 나타난 신자유주의는 규제와 세금을 낮추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을 편다. 영국의 대처리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경제적 효율성은 높아졌으나 양극화가 심화한다. 앤서니 기든스는 1998년 출판된 그의 저서에서 ‘제3의 길’을 표방했다. 그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사회민주주의는 사회복지 효율화, 노동시장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이념을 수용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세계경제의 이념적 사조는 지금 다소 혼란기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모두 극복해야 한다. 거창하게 미래 경제체제에 대한 합의 도출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할 때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 정도엔 공감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사회보장 확대 등 개인에 대한 정부역할을 강화하면서 시장과 기업에 대한 정부 역할은 축소하는 것이다. 정부는 재분배를 통해 적극 개입하지만, 사전적인 시장개입은 최소화하자는 뜻이다. 물론 불공정한 시장을 교정하는 정부 개입, 기업과 노동자가 힘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정부 개입은 계속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국가적 문제해결 역량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은 국민여론이다. 적절한 정부의 역할, 살고 싶은 국가의 모습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보자. 그래야 변화의 방향을 알 수 있고 개혁의 동력도 생긴다.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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