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유럽 현장을 가다 上]

<상> 요람에서 무덤까지 블록체인 구축 네덜란드
집에서 육아 도운 산후조리사
앱 접속해 서비스 확인 등록
몇 분 만에 보험금 지급 돼
사회복지ㆍ물류 등 시범사업 진행
프로젝트 35개로 점점 늘어
정부는 기업과 협업… 간섭 안해
시간 줄이고 공정성 높이고
IoTㆍAI와 결합도 실험 중
네덜란드 산모(왼쪽)와 산후조리사가 산후조리 서비스 내용을 '메인조그로그' 앱에 기록하고 있다. 네덜란드 RTL Z방송 캡처

지난 2월 네덜란드 매체들은 ‘빌리’라는 아기의 탄생을 대서특필했다. 네덜란드 중부 아른헴 지역에서 태어난 초록 눈의 빌리는 곧바로 ‘블록체인 아기’로 명명됐다. 네덜란드 국민이면 의무 가입해야 하는 민영 건강보험은 여성이 집에서 출산할 경우 산후조리사를 집으로 보내 준다. 재택 출산 및 산후조리 서비스를 받은 뒤 비용을 보험사에 청구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종전에는 서류 작성부터 제출, 심사까지 이 과정이 30일 넘게 걸렸다. 그러나 이날 빌리의 엄마 앨리스와 산후조리사는 ‘메인조그로그‘(Mijn Zorg Logㆍ나의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출산 사실과 산후조리 내용, 이에 소요된 시간 등 실제 서비스가 있었다는 확인을 통해 단 몇 분 만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사상 처음으로 ‘블록체인 출산 및 산후조리 확인 서비스’가 이뤄진 것이다. 이는 네덜란드 정부가 산후조리 서비스에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기술을 접목한 덕분이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공공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블록체인을 통해 삶을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바꾼다는 게 정부의 의지다.

공공부문 35개 프로젝트 속도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민간 기업과 손잡고 실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공공분야 블록체인 시범(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3개로 시작된 파일럿 프로젝트는 이미 보험, 사회복지서비스, 물류 등 35개로 늘어난 상태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산후조리 서비스는 이 중에서도 가장 진행이 빠른 프로젝트다. 네덜란드 건강관리공단과 최대 보험회사인 VGZ,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인 렛저레오파드가 손잡고 시스템 구축과 테스트를 1년 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정부와 보험사는 행정절차에 들던 각종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산모도 종이 서류를 작성해 보험사에 청구해야 하는 귀찮은 과정이 사라진다. 스마트 계약 과정에서 자동으로 각 항목을 확인하는 만큼 사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고 처리 속도도 빨라 보험사와 가족, 산후조리사의 만족도가 모두 높다는 게 네덜란드 정부 설명이다. 50여명의 산모를 대상으로 한 시범서비스는 점차 확대된다.

암스테르담 등 3개 도시에선 전기자동차나 전기스쿠터를 이용할 때 보조금 등을 지급할 때도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종전엔 정부가 이용권(바우처)을 발급하면 수급자가 이를 해당 상점에 내고 다시 상점은 이 바우처로 정부에 비용을 청구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블록체인을 통해 이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정확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마를로스 폼프 네덜란드 정부 블록체인 프로젝트 총괄이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파일럿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암스테르담=허경주 기자

이웃 나라인 벨기에와는 대학 학위ㆍ졸업증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2개 대학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데, 프로젝트가 글로벌 단위로 확장되면 굳이 모교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학위를 증명할 수 있다. 블록체인을 통해 신뢰성이 높은 서류를 쉽게 제출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독성 폐기물 운반ㆍ처리, 코코넛과 커피콩 등 식품의 유통과정 등을 블록체인을 통해 관리해 정확성과 투명성, 공정성을 높이는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마를로스 폼프 네덜란드 블록체인 프로젝트 총괄은 “추후 블록체인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과 결합해 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며 “유럽연합(EU)은 여러 나라와 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간단한 서류 하나만 확인하려 해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블록체인을 통하면 이러한 불편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협력하되 주도하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정부와 기업, 신생혁신기업(스타트업)간의 협업 덕분인데, 그 중심에 지난해 3월 출범한 민ㆍ관ㆍ학 협력기구인 네덜란드블록체인연합(Dutch Blockchain CoalitionㆍDBC)이 있다. DBC에는 경제부와 법무부를 포함해 5개 정부부처, 네덜란드 최대은행인 ABN암로 같은 대형 은행ㆍ보험사 등 15개 기업, 델프트 공과대학을 비롯해 15개의 대학 등 총 35곳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예산 100만 유로(약 13억원) 가운데 25%는 정부가, 나머지 75%는 기업에서 지원했다. 이들은 ▦블록체인을 통한 개인정보의 디지털화 ▦블록체인 활성화 환경 조성 ▦인적자원 발굴 등 3가지를 핵심 목표로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연합 산하에 20개의 실무반을 꾸렸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찾은 네덜란드 헤이그 델프트 공대 내 DBC 사무실엔 전국민의 신원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디지털아이디’, 인근 국가와의 기술 협력 전략을 짜는 ‘인터내셔널 트랙’, ‘대학교수 재교육’ 등 20개 워킹그룹에서 각각 진행 중인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이름과 단기 목표가 적힌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프란츠 반에테 DBC 사무국장은 “네덜란드 경제를 유지하는 무역, 물류, 금융, 식료품 산업 분야가 모두 블록체인과 결합할 경우 크게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츠 반에테 네덜란드블록체인연합 사무국장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델프트공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현재 네덜란드 정부와 연합이 추진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이그=허경주 기자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는 협업하되, 전면에 나서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진 않는다. 반에테 사무국장은 “네덜란드는 ‘정부는 주도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정 KOTRA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무역관 과장은 “네덜란드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분산하고 정보 투명화를 지향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ㆍ헤이그=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네덜란드가 추진 중인 다양한.jpg-박구원기자 /2018-07-08(한국일보)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KPF 디플로마-블록체인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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