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계약서] 그래도 한다면... 이것만은 기억을!

① 막연한 부양 아닌 구체적 조건
② 정기적인 금전 지원 내용 명시
③ 모든 자식들의 양해ㆍ동의 필수
④ 자식 부부가 합의했는지 확인
⑤ 연대보증인 등 안전장치 마련
“지금 도장 찍으면 갑을관계 되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효도계약서 작성을 극구 말린다. 천륜지정(天倫之情)으로 묶인 부모와 자식이 재산과 효도를 조건으로 계약하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게티이미지뱅크

종이 한 장으로 효(孝)를 담보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와 자식이 주고받은 ‘효도계약서’는 세상의 다른 계약과 확연히 다를 것이라 믿으면 큰 착각이다. 계약서로 묶인 관계는 결코 훈훈할 수 없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서로 ‘갑’과 ‘을’로 나누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부모-자식 관계는 ‘갑-을 관계’로 변해버린다는 것.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진가를 발휘하는 효심을 법률로 옭아매려고 하니 이질감도 심하다.

부모와 자식이 계약서를 마주하고 앉는 풍경은 아직 그리 흔하지 않다. 등기부등본을 넘기고 계약서까지 쓰려면 최소한 수억원대 여유 자산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세종 김현진 변호사는 “대형로펌을 찾아오는 고객은 주로 중견기업 회장 같은 경영인들”이라며 “연로한 부모들이 자식에게 지분을 물려주면서 ‘다 넘겨주고 나면 자식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마음에 걸리니 주요 자산을 줄 때 로펌을 찾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가족 간에 계약서를 쓴다는 게 껄끄러워 언급조차 터부시했지만 요즘엔 부모들이 자식에 주요 재산을 증여하면서 계약조건을 명시하는 경우들이 꽤 있다”고 덧붙였다.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범한 가족들이 계약서를 쓰는 일은 더욱 드물다. 중ㆍ소형 변호사 사무실에서 다루는 효도계약서나 조건부 증여 관련 상담은 한 달에 고작 1~2건 정도에 불과하다. 분쟁은 이 드문 케이스에서 발생한다. 효도계약서 소송을 다룬 경험이 있는 조재호(39) 변호사는 “재산을 둘러싼 가족 문제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이미 가족 간 갈등이 깊어져 해결이 아주 힘든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부모가 생전에 물려준 재산을 도로 찾겠다고 법적 대응을 고민할 정도라면 ‘곪을 대로 곪아서 의사를 찾아온 말기암 환자’와 같다”는 게 조 변호사의 목격담이다. “살아계신 부모님의 유일한 재산마저 미리 넘겨달라고 요구하는 자식이라면 효도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모님은 집 한 채를 빼고는 노후대책이 마련돼있지 않으니 절실한 마음으로 조건을 단 증여 계약서를 씁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효도계약서를 절대로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윳돈이 있거나 불확실한 상속시점의 세금을 줄이기 위한 절세차원이라면 몰라도 재산과 효도를 맞바꾸겠다는 효도계약서 고유의 목적이라면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다. “효도계약서를 쓰자고 하는 쪽은 대개 부모님입니다. 자식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전화 한 통 더 받으며 용돈 얼마쯤 받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건을 어긴다고 자식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되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러니 효도계약서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이 밖에도 효도계약서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돈을 둘러싼 가족 간의 법적 갈등은 가족공동체가 해체되는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재산분배는 주는 쪽과 받는 쪽의 1대 1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뿐 아니라 사위나 며느리의 효도를 함께 받을 거로 기대하는 부모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여러 자식 중 특정인에게만 재산을 줬을 때, ‘잘 모시겠다’는 추상적인 약속이 부모와 자식 서로에게 다르게 해석될 때에도 갈등은 싹튼다.

‘효도’라는 따뜻하고 신성한 두 글자 뒤에 ‘계약’이라는 매정한 단어가 따라 붙으니 애석하기만 하다.

변호사들은 그래도 효도계약서를 써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다섯 가지를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첫째, 원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막연히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라거나 ‘모셔야 한다’고 적어서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우리 민법 제974조는 기본적으로 부모를 부양할 의무(일반적 부양의무)를 정하고 있는데,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부양의무를 명확히 적어야 계약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막연하게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하면서 명시적인 조건을 달지 않고 증여한 때는 돌려받기 어렵다”면서 “조건을 전제로 증여를 할 때는 원하는 내용을 뚜렷하게 적어야 이를 어기면 ‘계약위반’에 따른 소송을 통해 물려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정기적인 금전 지원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 부모가 소유한 유일한 부동산을 자식에게 줄 때는 당장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항이다. 예를 들어 “매월 말일에 100만원을 지급한다”거나 “함께 거주할 장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만약 따로 살게 될 경우 매월 50만원을 추가로 지원한다”와 같은 조항이 필요하다. 임대수익이 발생하는 부동산 소유권을 넘겨주며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부동산에 대한 관리ㆍ처분권한은 부모에게 있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도 비슷한 예다.

셋째, 다른 자식들의 양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조 변호사는 “부모가 어느 한 자녀에게만 재산을 준 경우 자식들 간 분쟁이 생길 수 있다”며 “또 증여를 받는 자식이 조건을 잘 이행하는지에 대해 다른 자식들의 감시기능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사망한 때에는 재산을 적게 받았거나 전혀 받지 못한 자식이 ‘유류분(상속재산 중 다른 상속인이 법률상 보장받는 금액) 청구 소송’을 통해 자신의 몫을 요구할 법적 권리가 있는 점도 주요한 이유다.

넷째, 자식 부부의 합의가 먼저다. 자식과 그 배우자가 충분히 상의한 뒤 계약서에 서명해야 뒤탈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라’거나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라’와 같이 자식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이런 부탁은 며느리나 사위, 손자들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식 부부의 생각이 다르면 효도계약을 이행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조 변호사는 “자식의 배우자는 ‘반드시 이렇게 하라’는 계약내용에 거부반응을 가질 수 있다”면서 “배우자가 연락이나 방문 조건을 미리 알고 흔쾌히 따르면 오히려 부모와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섯째,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 좋다. 단순한 ‘약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면 모든 걸 내어준 부모가 ‘살길’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반 부동산 계약과 마찬가지로 연대보증인을 세우면 책임감을 더할 수 있다. 보증인은 자식의 배우자나 다른 자식 등 증여 사실을 알고 있는 가족을 고려할 수 있다. 또 소유권은 넘겨주되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 변호사는 “혹여 부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바로 근저당권을 실행해 재산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두는 것이 확실하다”고 조언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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