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8쪽 수사와 재판 기록 분석]

#1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술접대 불려가
“부모님 안 계셔 접대 강요 집중” 한숨
소속사 대표 폭행에 심신 날로 피폐

#2
장씨 “어머니 제삿날에도 술접대 강요”
거절하면 승합차 처분 등 보복
“30분 내로 와라” 늦으면 맞기도

#3
장씨 사망 1년 전부터 우울증 약
사흘 동안 8일분을 몰아 먹기도
장자연씨가 처지를 비관한 내용을 전하는 전 소속사 총괄매니저 유모씨의 진술조서.

2009년 2월 28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위치한 한 연예기획사 사무실에서는 여성의 흐느낌이 30분간 이어졌다. 소속사 대표 김모(49)씨의 술접대 강요 등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 배우 장자연(당시 29세ㆍ사망)씨는 전 총괄매니저로 독립해 기획사를 차린 유모(38)씨에게 며칠 전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한 뒤, 이날은 사무실로 찾아와 눈물을 쏟았다. 유씨는 장씨를 달래기 위해 서둘러 직원들을 퇴근시킨 뒤 근처 호프집으로 가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 유씨는 “자연이가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하루에 손님을 몇 명을 받아’라고 물어보길래 ‘장사가 잘되면 많이 받겠지만 하루에 2, 3명쯤 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라며 “그러자 자연이가 ‘그럼 나는 술집 여자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2010년 9월 10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공판 조서 재구성)

촬영 스케줄을 무시한 술접대 강요, 연예계 퇴출을 암시하는 협박과 폭행, 그리고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성접대 강요 속에 그(장자연)는 일주일 뒤인 2009년 3월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5월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휴대폰에 우상이던 심은하, 최진실의 사진을 저장해 놓고 “최선을 다해 배우 일을 하고 싶다“(2010년 7월 2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지인 정모씨 증인신문조서)고 다짐했던 꿈많은 연기자 장자연. 그가 ‘술집 여자보다 못한 신세’를 한탄하며 세상을 등지도록 이끌었던 끔찍한 고통의 장면들은 한국일보가 국내 언론 최초로 총 5,048쪽에 달하는 장자연 사건 수사ㆍ재판 기록을 전수 분석하면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2일 고 장자연씨 사건 수사에 축소ㆍ은폐나 검찰권 남용이 있었는지 본조사를 벌이기로 결정, 진상규명 요구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기록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뤄진 장씨 사건과 관련한 수사와 관련자들의 각종 소송전을 거치면서 작성된 것들로,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기록들에 따르면 2007년 계약 이후 장자연씨는 최소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씩 술접대에 불려 나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속사 대표 김씨는 다른 연기자들에 비해 유독 장자연씨에게만 오랜 시간 술자리에 머물게 했다. 같은 소속사 후배 연기지망생으로 장자연씨와 친분이 두터웠던 윤모(31)씨는 “일주일에 많게는 4일, 적게는 2일 가량 기획사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갔다. 강남에서 이름 있는 술집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술집에서 일하냐고 오해할 정도였다”라며 “자연이 언니 역시 같이 나오라고 하면서 술접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2009년 3월 15일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진술조서)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진술조서에서 “장자연과 같이 술자리에 나가면 내가 먼저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다음날 몇 시에 집에 들어갔냐고 (자연 언니에게) 물어보면 몇 시에 갔다고 답은 잘 안 했지만 싫은 표정을 지었다”라고 밝혔다.

김 대표의 술접대 지시는 여러 기록에서 스케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장자연씨와 친하게 지냈던 이모(38)씨는 “김 대표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촬영 스케줄이 있던 장자연에게 갑자기 태국으로 골프를 치러 오라고 했는데 자연이가 이를 거절하자 ‘많이 컸다. 일 그만하고 싶냐’라는 말을 했다”(2009년 7월 14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진술조서)라고 진술했다. 장씨는 태국에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김 대표는 이후 갑작스레 자연이의 이동용 승합차(기아 카니발)를 촬영 하루 전 처분했고 난감해진 장자연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라고 진술했다. 당시 대표 김씨는 보복성 처분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동료 연기자 윤씨는 “한번은 외국에서 아버지가 오셔서 술자리에 가지 않은 적이 있는데 대표가 화가 많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다른 사무실 직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참석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조사에서 “(장자연씨 등이) 본인이 거절의사를 밝히면 오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라며 “참석했다면 본인이 필요하여 참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씨는 술접대 강요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유를 자신이 부모가 없어 보호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여기며 더욱 괴로워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남지청 진술조서에 따르면 윤씨는 “자연 언니가 술자리 같은 곳에 가기 싫어서 한숨을 쉬면서 ‘너는 발톱의 때만큼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며 “나에게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숨지기 4일 전 김 대표 지인과의 통화 내용을 보면 자신의 계약해지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던 중 장자연씨는 “얘기를 하다 저도 혼자 맞은 것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랬음 벌써 다른 부모님 같으면 쫓아갔겠죠“라며 “제가 부모님도 없고 저희 언니(친언니)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특히, 2008년 10월 28일 TV조선 방정오 전무 등이 참석한 술자리에 다녀온 뒤 장자연은 “어머니 제삿날인데도 술자리에 갔다”라며 차 안에서 서럽게 울었다.(2009년 3월 23일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전 로드매니저 증언) 그날 술자리에 들어갔던 여성 접대부도 “당시 장자연이 같은 술집 접대부인 줄 알았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혼자라는 고립감과 대표와의 위계적 관계는 폭언과 폭행에 대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2008년 6월 19일 소속사 건물에서 열린 한 드라마 제작자의 생일파티에서 장자연씨는 도중 김 대표에게 불려가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차례 폭행당했다. 대표의 사생활을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했다는 이유다. 전 매니저 유씨는 “소속사 사장이 전화해 30분 내로 오지 않으면 시간이 추가되는 만큼 맞았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 장자연씨의 스타일리스트였던 이모(37)씨는 “어느 날 아침은 장자연이 눈가에 멍이 들어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답했다”라며 “당시 김 대표의 폭력성이 소문나 ‘대표에게 맞았나’라고 생각했다”(2009년 3월 15일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진술)라고 전했다. 실제 김 대표의 손찌검은 업계에서도 유명했다. 한 엔터테인먼트 기업 전 대표 박모(47)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은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라며 “폭언 등을 심하게 해 직원들이 많이 무서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진술했다. 김 대표의 비서였던 심모(40)씨는 “김 대표의 잦은 폭행과 욕설로 운전수 겸 수행비서를 했던 이들이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바뀌었다”라며 “마지막 달 월급을 받지 못해 노동청에 고소했더니 김 대표가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해 갔더니 ‘월급 줄 테니 맞고 가라’라고 말해 어처구니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상해와 폭력 혐의 등으로 벌금형을 일곱 차례 받은 바 있다.

계속되는 불편한 상황은 장씨의 정신과 신체를 피폐하게 했다. 숨지기 일주일 전인 2009년 2월 28일 전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장씨에게 전화해 남자친구가 장씨에게 제공했던 1,000만원을 상환하라고 독촉하자 “오늘부터 나가서 구걸을 해서라도 빌려 보겠다”라며 힘들어하기도 했다. 장씨는 평소 신경정신과를 방문하는 등 사망 1년 전부터 우울증약을 꾸준히 복용했는데 사망 이틀 전(3월 5일)부터 사흘에 걸쳐 저녁에 먹어야 할 약 8일분을 몰아서 먹기도 했다.(2009년 3월 31일 분당경찰서 지인 이모씨 진술). 특히 문건 작성(2009년 2월 28일) 이후에는 지인들이 만나자고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3월 1일부터 나흘간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대낮에 소주 한 병을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사흘 뒤인 3월 7일 장자연은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전 로드매니저 김씨에 따르면 김 대표를 포함 기획사 측 누구도 빈소를 찾지 않았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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