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에 피해사례 등 자료요청

대법원 숙원 상고법원 반대하는
하창우 당시 회장 압박하기 위해
‘서울변회 재정을 파탄’ 덧씌우고
수임내역 국세청 제공 등 기획
변협의 경력판사 채용 면접권을
지방변호사회에 넘겨 힘 빼기도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 전 대법원장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에 반기를 든 하창우 전 변협 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변협 정책이나 사업에 제동을 건 정황이 속속 드러나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주요 물증 제출을 거부하는 상황인 걸 감안하면 혐의 관련 자료 확보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1일 변협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지난달 29일 변협에 ‘수사협조 의뢰’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검찰은 ▦변협에 대한 법원 측의 지원 제한 및 협조 거부 사례 ▦법원 정책 변화로 변협과 변호사의 지위 및 위상이 떨어진 사례 등 자료를 요청했다. 변협 측은 수사에 도움이 될 자료를 선별해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의 자료 요청은 하 전 변협 회장에 대해 양승태 대법원이 조직적으로 불법 사찰을 했다는 의혹에 따른 것이다. 2015년 2월 취임한 하 전 회장은 2년간 재임하며 상고법원 설치 반대, 대법관 정원 증원, 대법관 등 변호사 개업 제한, 법관평가제 도입 같은 법원이 불편해 하는 정책을 잇달아 추진했다. 변협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법원 입장에서 눈엣가시인 하 전 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검찰에 넘긴 하 전 회장 관련 문건에는 ‘변협 자체에 대한 비난보다 하창우 무한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을 중점으로 해야 한다’고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검찰에 보낸 410건 문건 중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대한변협 대응방안 검토’ ‘대한변협회장 관련 대응방안’ 등 4건이 변협 및 하 전 회장 개인 압박용이다. 실제 문건들을 확인한 하 전 회장은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29일 참고인 조사에서 검찰이 보여준 문건엔 이상한 내용들이 매우 많았다. 당시 이상하다 싶었던 일들이 이제 보니 그 내막을 알겠다”고 말했다.

당시 행정처는 하 전 회장의 재산과 수임 내역 정보를 수집해 흠집을 내려고 했다. 하 전 회장은 “서울변호사협회(서울변회) 회장 시절 교육문화관을 산 걸 두고 ‘재정파탄’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문건에) 기재돼 있었다”고 했다. 교육문화관 설립 당시 서울변회 내 공제회 기금에서 200억여원을 빌려 충당했는데, 이를 ‘재정파탄자’라는 식으로 허위 유포할 것을 검토했다는 얘기다.

또 문건에는 ‘하 전 회장 건물 보유 내역을 외부에 알려 개혁적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방안’을 검토한 내용과 변호사 수임내역을 국세청에 제공하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은 행정처 기획조정실과 사법지원실, 사법정책실이 모두 관여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 전 회장이 변호사 시절 부실하게 소송을 수행했다는 내용을 파악해 특정 언론사 기자를 지목해 내용을 알린 것으로 보인다. 내용 중에는 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 통계를 이용해 파악한 정보도 포함됐다. 문건에는 ▦하창우 변호사 업무 포기 선언 종용 ▦정계 진출 포기 선언 압박 등의 내용을 검토한 내용도 담겼다.

변협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 전 회장 때문에 변호사 지위가 흔들리고 변협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것이다. 변호사 중 경력 판사 채용 과정에서 변협에서 우선 면접을 보고 부적격 판정을 하던 전례를 깨고, 대법원에서 변협을 제치고 지방변호사협회에 면접권을 주기도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각급 지방변호사협회에서 면접을 하면서 제각각 기준을 적용해 선발에 혼선을 빚었을 뿐 아니라 변협 위상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문건들에는 이 밖에도 ▦법원의 변호사 평가제 시범 실시 계획설 유포 ▦변호사의 변론 연기 요청 원칙적 불허 ▦변협 주관 행사 및 연수에 판사 불참 ▦변협 산하 법률구조재단 지원금 삭감 ▦변협 신문에 법원 광고 게재 중단 ▦변호사 부적절 변론 사례집 발간 추진 등의 내용도 들어있다. 변호사들의 법정 내 대기실을 없애거나 법원 출입 시 신분증 패용이나 물품 조사 강화 등을 통해 괴롭히는 방안까지 검토됐다. 한 변호사는 “하 전 회장 재임 중 변협과 법원의 협조는 어느 때보다 저조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협 관련 대법원 문건에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사자성어가 눈에 띈다. 중국 전국시대 전략가인 범저가 세운 책략인데, 구체적으로 변협과 멀리하고 지방변호사회와 가깝게 지내겠다는 뜻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하는 하 전 회장에 대한 대응을 전쟁으로 여겼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하 전 회장 및 변협과 관련한 문건 및 하 전 회장 진술 내용, 그리고 현재 변협이 제출할 자료 등을 분석해 재차 대법원 측을 압박,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의 자료를 받아낼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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