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쉴 수 없고, '번 아웃'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

출근시간이 가까워져도 굼뜨고, 버스가 막혀도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고, 회의 자리에서는 종종 생각이 끊겼다. 퇴근 후에도 사람들과 만남을 피하고,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늘었다. 빠릿빠릿하던 생활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무력하고, 우울하고,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혹자는 소진(Burn out)된 상태라고 부른다.

내가 일하는 곳은 주 4일 근무에 일터 분위기도 비교적 여유롭고 유연하다. 그런데도 동시에 서너 개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수행해야 한다. 퇴근 후에도, 잠을 잘 때도 일과 단절된 채로 생활하기 어렵다. 나름대로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해보았다. 의도적으로 일 생각을 접고, 운동을 하거나 텃밭을 일군다. 그런데 일과 삶의 균형이란 단순히 일하는 시간을 줄인다고 해서 찾아지는 건 아니었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프레인은 ‘일하지 않을 권리’에서, 사람들이 일을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다가 깨지는 순간을 경험하는데 이를 ‘단절점’이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 단절점을 경험하는 듯하다. 그동안 일은 자아실현이나 개인 발전이나 생계를 위해 삶 전반을 지배해 왔다. 삶에서 일은 일부가 아니라 전체였고, 일하기 위해 사는 삶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일 중심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윤리다.

안정적인 일터는 갈수록 줄어들고, 청소년부터 노인층까지 전 세대가 취업시장의 문턱을 드나들어야 한다. 일할 기회가 간절해지는 곳에서 일은 더 신성한 것이 된다. 빠르면 10대부터 노동시장에 들어가고, 20~30대에 취업준비를 해서 직장을 얻은 이들 중 제대로 된 휴식을 누려 본 이들은 몇이나 될까? 또 은퇴 후에 재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휴식이란 어떤 의미인가? 오래 일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오래 쉴 수 없는 것도 문제이다. 휴가나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퇴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그마저도 모아 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사회에서 쉼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주변에 아프거나 소진된 상태에서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실업급여를 받는 이도 있고, 받을 수 없는 이도 있다. 국가는 일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사정 따위에 관심이 없다. 일을 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는 이유로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거나 끊임없이 자신을 일할 의지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 일하다가 소진되어도 쓰러져도 개인이 추스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한편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제도가 도입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도입된 노동시간 단축제도는 주 7일 기준 최대 68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했던 것을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한국은 2016년 기준 연평균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였다. 이러한 수치가 아니더라도 과로사, 과로자살, 퇴사 등 무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노동환경은 흔한 풍경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노동시간 단축은 더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일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삶의 균형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일과 삶의 균형은 기계적으로 배치한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다시 ‘일’ 문제로 회귀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일과 삶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말은 일을 삶에서 분리시키거나 삶을 일에서 분리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나는 요즘 소진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의 생애주기에서 일이란 무엇이었는지 고민을 시작했다. 삶의 총체성 안에서 다시 ‘일’을 배치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오래, 쉬어 보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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