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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규제와 귀농산촌

입력
2018.06.29 10:28
수정
2018.06.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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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으로 귀산하자. 1만㎡ 숲에 소 2마리, 염소 4마리, 닭 10마리, 거위 4마리, 돼지 2마리, 꿀벌 5통을 키우며 소박한 민박을 한다고 가정하자. 동물농장을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꾸미자. 어린이가 포함된 도시민에게 숲 생태를 보여 주고 가축과 어울리는 체험을 하며 노후를 보내면 어떨까. 정감 있고 서정적이다. 만약 그런 꿈을 가졌다면 망상에서 빨리 깨는 게 좋다.

도시민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시골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아서다. 정부는 “타성과 규정과 싸우고, 이해관계자와 대화하고 가치의 충돌을 조정하느라 애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귀농이나 귀산을 장려하는 입장에서 보면 공무원만의 악보를 고객의 만족도는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연주한다. 시골로 주거를 옮기고 소득을 내려고 하면 현장규제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시골로 가서 동물 몇 마리 키우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가능하다.

축산법에 의하면 소ㆍ돼지ㆍ닭은 허가증이 있어야 사육할 수 있고 사육하려면 건축허가를 받아야 된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방제를 위해서란다. 방역 기준과 소독 기준을 충족하는 건물을 지으려면 몇천만 원 이상이 든다. 반면 염소나 거위ㆍ말ㆍ당나귀ㆍ개는 아무런 허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고 많이 나고 공무원들 귀찮게 하는 것은 규제폭탄을 퍼붓고 문제가 없거나 몇몇이 사육하는 가축은 거들떠도 안 본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나 통일은 역대 어느 정부 보다 잘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자리창출, 규제완화는 정반대라고 보는 견해도 상존한다. 판단의 잣대를 공무원이 쥐고 흔드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행정은 새롭게 일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한 두부가 작년 11월에 만료됐다. 두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이고 콩나물은 아니라는 논리도 문제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두부나 콩나물은 농민들이 시골에서 생산해 팔아야 하는 품목이지, 중소기업이 팔 품목이 아니라는 인식은 없다. 중소기업도 어렵지만 농민이나 임업인은 몇 배 어렵다.

두부나 콩나물은 농민이 키워서 팔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에 ‘안전’이란 잣대를 만들고 식약처나 농림부가 개입하는 순간 거대한 괴물이 되고 농민이나 귀농산촌인들은 진입할 수가 없다. 누구나 쉽게 일하고 소득도 내고 돈 벌게 만들자. 규모가 커지면 세금도 걷고 규제해야 평등한 사회이다. 중후장대 산업은 대기업에 요구하라.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유치원생부터 대학 교수에게 내고 푸는 사람이 모두 가진다는 규칙을 정하면 안 된다. 언제나 대기업이나 부자들만이 승자이다. 유치원생은 유아수준으로, 중고생은 학습과정에 맞는 문제를 내야 풀면서 도전하고 경쟁이 성립한다.

거대한 규제 틀에 몰아넣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사업할 수 있다”고 억압한다면 대부분의 귀농산인은 좌절하고 정부를 욕할 것이다. 정말로 사업을 간절히 원한다면 무허가나 편법을 쓰고, 행정은 제재를 가할 것이다. 결국 전과자로 낙인 찍히고 사회를 원망한다.

산림면적은 국토의 65%이다. 이 중 사유림이 약 70%이다. 사유림 중에 부재지주가 소유한 산림이 60%이다. 이들이 시골로 귀산해 무언가를 하려면 돈 없이는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경영계획과 전용, 일시 사용허가 등 너무 까다롭다. 어설프게 시도한다면 대부분이 산림법과 산지관리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된다. 30여년 산림적폐가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지속될 나라가 무섭다. 정부의 허가 없이 동물 몇 마리씩 키우고 체험하는 것이 큰 죄를 짓는 것인가. 규제공화국을 만들어 일할 수 없게 만든다면 공무원 월급은 누가 주나. 국민은 물이고 공무원은 물고기이다. 물 없이 물고기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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