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법관의 독립과 신뢰’ 법복에 담긴 의미를 다시 보다

다른 색과 안 섞이는 검정색은 ‘독립’
앞단에 수직 주름은 ‘강직함’ 상징
판사들 “법복 입으며 초심 잃지 말자”
“개인 감정 누르고 공정하게” 되새겨
주 5일 재판에 세탁할 여유도 없어
소매 잘 닳아… 최대한 깨끗이 보관
25일 서울에서 근무하는 김모 판사가 자신의 사무실 거울 앞에서 법복을 갖춰 입고 있다. 법복을 입는 순간 판사는 개인에서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법부의 대표로 변신한다.
여성용 법복. 전체적인 모양새는 남성용과 같으나 흰색 셔츠 대신 블라우스를, 넥타이 대신 은회색 에스코트 타이를 맨다.
남성 법관은 흰색 셔츠에 은회색 넥타이를 맨다.
한국의 미를 살리기 위해 법복의 뒷면 중앙에 전통 매듭 장식을 넣었다.
1998년 3월부터 입기 시작한 현재의 법복은 주색을 검은색으로 하고 앞단 양면에 수직 주름을 넣어 외부 영향에 동요하지 않는 법관의 독립과 강직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은 제103조에서 법관의 독립을 명시하고 있다. 딱딱한 헌법 조항을 찾지 않더라도 법관이 새겨야 할 원칙과 가치는 그들이 입는 법복에 담겨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대로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사법부 스스로 훼손한’ 최근의 현실을 계기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고 관심조차 없었던 법복의 의미를 꺼내 본다.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어쩌면 법복에 담긴 취지와 속뜻을 새기는 것부터가 아닐까.

#1 법관의 공정성과 독립 상징

현행 법령이나 규칙에는 법복의 의미가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지금의 법복을 제정, 추진하는 과정을 설명한 금기숙 홍익대 교수의 ‘법복 디자인 연구’에 따르면 법복은 ‘법의 존엄성과 법의 기준에 따라 시비를 분별하는 공정한 법관의 행위를 상징하는 복식’으로 규정된다. 당시 채택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법복의 색깔과 디자인에 이 같은 취지가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법복의 주색인 검은색은 다른 색과 섞이지 않는 특성 덕분에 어떠한 외부적 영향에도 동요하지 않는 법관의 독립을 상징한다. 법복 앞단 양옆의 수직 주름이 표현한 것은 법관의 강직함이다. 대법원 법원 전시관은 법복의 의미에 대해 구안내문을 통해 이같이 소개했다.

#2 대여할 뿐 지급하지 않는다

법관및법원사무관등의법복에관한규칙은 ‘법관에게 법복 1착을 대여하고, 그 대여기간은 재판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으로 하며, 법관이 대여기간 안에 전직, 퇴직 또는 사망하였을 때에는 법복을 반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재판장의 권한이 언젠가는 반납해야 할 임시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3 법복의 숭고한 의미를 입다

법관들 사이에서는 첫 재판에 나서는 초임 판사의 법복을 부장 판사가 입혀 주는 전통이 있다. 경력 10년의 한 판사는 “당시 특별한 설명은 없었지만 법관으로서 지닌 초심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면서 “법복을 입는다는 것은 사법부를 대표하는 판사로서 공정성과 정성의 의무를 스스로 부여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또 다른 10년 차 판사는 “법복 착용이 재판 준비의 마지막 단계인 만큼 생각을 정리하면서 재판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30년간 판사로 재직한 한 법원장은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하겠다는 다짐은 모든 판사가 비슷할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판사들이 할 일은 법복을 입고 재판정에 나가 충실한 결론을 내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법복의 변천: 일제강점기] 당시 변호사의 법복. 법복 정면에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오동잎 문양을 수놓았다
[법복의 변천: 1953~1966년] 대한민국의 첫 법복. 일제강점기의 법복과 유사한 형태로, 오동잎 대신 무궁화 문양이 가슴에 그려졌다. 국가에서 정한 법복이 없었던 광복 이후부터 1953년 이전까지 법관은 깨끗한 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했다.
[법복의 변천: 1966~1998년] 미국의 법복을 차용한 디자인으로 무궁화와 법모를 없애는 대신 넥타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법복의 변천: 1998년~현재] 자주색 양단과 넥타이에 무궁화 문양을 넣었고, 전체적 디자인에서 한국적 미를 더했다.
#4 현실 속의 법복은…

“법복을 자주 입다 보면 매번 그 의미를 새기고 다짐하기 힘들다.” 경력 12년 차 판사의 솔직한 대답이다. 이어서 그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화가 나도 성질 내지 말고, 잘 듣고, 잘 판단하자’라고 다짐하는 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판사(10년 차)는 “법복을 입을 때 넥타이의 무궁화 무늬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고 했다. 경력 5년 차인 한 판사는 “법복은 통풍이 잘 안되고 무거워 입는 순간 답답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불편함 덕분에 스스로 엄숙해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아무리 숭고한 의미를 지닌 법복이라도 현실에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애매한 겉옷임에 틀림없다. 1998년 이전의 구법복은 하복과 동복 구분이 있던 데 반해 현재의 법복은 ‘사계절용’ 딱 한 벌이다. 단가를 높여서 품질 좋은 법복을 입자는 취지였으나 냉방이 시원찮은 법대(판사석)에 하루 종일 앉아 재판을 하다 보면 땀범벅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간혹 탁자 밑에 준비해 둔 슬리퍼를 신거나 뒤쪽에 선풍기를 켜 더위를 식히는 경우도 있다. 경력이 오래된 한 판사는 “그래도 세상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 냉방시설이 없을 땐 물 양동이에 발을 담근 채 재판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겨울엔 셔츠 안쪽에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재판에 나서기도 한다.

법복은 법관 업무 기간 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상징적인 규정일 뿐 반납을 강제하지 않는다. 연임 시(10년) 새 법복이 나오는데, 입던 법복은 보통 본인이 보관한다.

통이 넓은 법복의 소매는 특히 잘 해지는 편이다. 재판정에서 수기를 하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느라 마찰이 잦고 모서리 등 돌출 부위에 걸려 찢어지기도 한다. 법복의 수선이나 세탁은 법관 개인이 알아서 하는데 주 5일 내내 재판이 있어 세탁할 시간조차 없는 판사들도 적지 않다. 해결책은 ‘깨끗하게 입는 것’뿐이다.

잦은 재판 일정 때문에 법복을 옷장 대신 사무실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가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자주색 양단이 누렇게 탈색된 경우도 있다. 법복의 훼손이 심하면 새 법복으로 교환이 가능하지만 사진을 통해 법복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등 기준은 까다롭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희지 인턴기자(이화여대 사회학과 3)

자료 제공 및 촬영 협조=법원 도서관

판사에게 법복은 근무복이나 마찬가지다. 재판 도중 수기를 하거나 컴퓨터를 다루다 보면 부분적으로 닳고 해지거나 탈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진은 해진 소매 부위.
햇빛에 장 시간 노출되면서 실크 소재인 양단이 누렇게 탈색된 판사의 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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