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원주민들은 나무가 우거진 숲을 농지로 만들 때 나무를 베지 않는다. 그 대신 원주민들이 모여 나무가 있는 숲을 둘러싸고 온갖 욕을 퍼붓는다. “너는 살 가치가 없어!” “우리는 널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 버려!” 이렇게 욕을 하고 나면 나무들이 서서히 말라 죽는다. 그러면 죽은 나무를 베어 내고 땅을 일궈 농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미르 칸 감독의 인도 영화 ‘지상의 별들처럼’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글자를 읽거나 쓸 수 없는 난독증을 가진 한 아이를, 학교의 미술 선생이 온갖 정성과 돌봄으로 자기정체성을 가진 아이로 살려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부모조차 자기 아이가 난독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몰라 게으르고 불성실하다고 항상 타박하기만 하는데, 이런 부모의 태도는 곧 솔로몬 제도의 원주민들이 나무에 욕을 퍼부어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을 미술 선생은 일깨워 주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교육계몽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 교육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이 영화는 오늘 우리 학교교육의 현실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느꼈다. 서열화된 교육,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학생의 개성을 무시한 교육, 이런 교육 현실에서 무슨 창조적 인재를 키워 낼 수 있겠는가.

나는 몇 년 전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청소년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의 정확한 이름은 ‘삼무곡청소년마을’.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후배가 교장으로 일하는 후미진 산골에 있는 일종의 대안학교인데, 교사와 학생들이 손수 지은 허름한 통나무 건물들이 교실이며 기숙사다. 그런데 학교 입구를 들어서다가 눈에 띈 현판에 새겨 놓은 글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 학교교육의 목표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이런 슬로건은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그 학교가 예술교육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슬로건을 내걸 수도 있지만, 오늘날 예술교육을 한다는 학교들조차 경쟁과 서열화가 심하지 않던가. 그런 학교에서 무슨 창조적 인재들이 나오겠는가. 하여간 그 학교는 자본주의 시대의 교육을 거스르는 철학을 앞세우고 있었다. 삼무(三無) 철학. 여기에서 삼무란 ‘소유가 없고, 계획이 없고, 판단이 없다’는 것.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그곳에서 우주보석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것이 나는 무척 신기했다. 생기발랄한 아이들, 꿈의 씨앗들이 스스로 새싹을 틔우며 삶의 예술을 꽃피우고 있는 것이 말이다. 온통 새싹들의 숨통을 틀어막는 세상이 아닌가. 그 후로 나는 그 학교를 자주 찾아갔는데, 거기만 가면 저절로 숨이 쉬어졌다.

계몽을 위한 영화에서는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교육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기뻤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다.” “넘버원이 아니어도 돼. 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 영화 속에 나오는 이런 말을 나는 그 학교 선생들을 통해서 자연스레 들을 수 있었다. 그 학교는 이제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거부한다. ‘학교’라는 이름의 낡은 이데올로기도 훌훌 벗어버리겠다고. “교육이라 불리었던 모든 행위들을 단호히 그만두고, 오직 삶으로 배우고 사랑으로 깨우칠 것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 사는 법을.”

그렇다. 세상의 어떤 생명도 고유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 사는 법’은 만유의 진리요 우주의 법칙이다. “모두가 가난해지고, 모두가 불행해지고, 모두가 적이 되어야 하는 이 미친 세상을 넘어, 모두가 풍요로워지고, 모두가 행복해지고, 모두가 친구가 되는” 새 삶을 우리는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고진하 목사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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