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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의 펭귄뉴스] 그린란드 회색 늑대와의 만남

입력
2018.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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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앞에서 마주친 회색늑대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텐트 앞에서 마주친 회색늑대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깜짝이야!” 밖으로 나가기 위해 텐트 지퍼를 내리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내 앞에 늑대가 서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2017년 7월 그린란드 북쪽 난센란(Nansen Land)에서 회색늑대(Gray WolfㆍCanis lupus)를 만났다. 난센란에 간 이유는 북극에 번식하는 조류를 관찰하기 위함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대형 육상 포식동물을 맞닥뜨리게 됐다. 처음 늑대가 나타난 때는 저녁식사로 소고기를 구워먹은 저녁이었다. 킁킁거리며 텐트 앞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고기 냄새에 강하게 이끌린 것 같았다. 몸길이는 1.5m 정도로 썰매개나 셰퍼드와 비슷한 체형에 온 몸이 흰색 털로 덮여 있었고, 머리가 크고 다리가 길었다.

두 마리의 늑대가 짝을 이뤄서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했고, 인간이 남긴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며 30분 가량을 머물다 떠났다. 텐트 위에 올려놓았던 내 등산화를 잘근잘근 씹어 놓은 덕분에 남은 기간 동안은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지내야 했다. 그 후로 약 5일 간격으로 다른 늑대들도 텐트 주위에 나타났으며, 북극에 머물러 있던 총 21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7마리가 관찰됐다.

회색늑대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미대륙의 야생에 서식하는 개과의 동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흔히 팀버울프(Timber Wolf)라고 칭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리 혹은 말승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까지 38개의 아종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그 가운데 그린란드늑대(C. l. orion)는 북그린란드에서 서식한다.

문헌 기록을 살펴보니 내가 캠핑을 했던 그린란드 난센란을 찾은 늑대 연구자가 있었다. 미국 알래스카 그린란드 늑대 조사팀의 울프 마커드페테르센 박사는 1991년부터 8년간 그린란드늑대의 흔적을 쫓았다. 심지어 연구자의 이름도 ‘늑대’란 뜻이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그린란드엔 총 6개의 큰 무리가 있으며 개체군 전체의 크기는 최대 55마리로 파악되었다. 그는 4년 동안 461개의 늑대 분변을 수거하여 아세톤으로 세척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했는데, 먹이원은 대부분은 소과의 포유류인 사향소(Muskox)인 것으로 나타났다.

텐트 주변을 머물던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극지연구소 제공
텐트 주변을 머물던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극지연구소 제공

지금은 개체수가 총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지만 그간 큰 차이가 없었다면 나는 55마리 중 7마리를 봤으니 전체 개체군의 10% 이상을 본 셈이다. 게다가 녀석들이 남기고 간 분변과 함께 모근이 남겨진 털을 수집할 수 있었다. 텐트 부근에서 커다란 수컷 사향소의 사체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사향소 뼈에 난 날카로운 이빨 자국으로 보아 늑대 떼에 사냥 당한 것으로 보였다.

늑대를 만난 뒤로 현장 조사를 나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고 흥분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늑대 아종을 연구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제 열흘 뒤면 다시 난센란으로 떠난다. 늑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이번엔 신발도 한 켤레 더 챙겼다. 부디 자주 찾아와서 분변과 털을 많이 남겨주고 가길.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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