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이 미래다]박외진 아크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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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첫 ‘감성AI’ 조나단 개발
기쁨ㆍ분노 등 인간 감정에 공감
감정 데이터 축척, 변화까지 예측
사람의 감성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자ㆍ심리학자와 협업
25일 서울 청담동 아크릴 사무실에서 박외진 대표가 감성 인공지능(AI) 플랫폼 조나단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정확하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인간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고 맞게 대응하는 AI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아크릴 제공

“괜찮으세요?”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도착한 이메일들을 차례로 읽어주던 인공지능(AI) ‘사만다’는 “그 메일은 됐고, 다음 메일 읽어줘”라는 주인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순간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이 대화가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 이 AI는 ‘다음 메일을 읽어라’는 명령을 바로 수행하지 않고 주인의 기분을 살핀다. 사만다처럼 개인의 감정을 분석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AI는 ‘감성 AI’로 불린다.

사람의 몸짓 표정 말투 등이 담고 있는 감성을 정보기술(IT)로 인식하는 ‘감성 컴퓨팅’ 분야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서 주도해 왔지만 아직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정도로 상용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계학습(머신러닝) 등 AI 고도화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기술들이 나오면서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 출신들과 대표적 AI 강국 일본 기업들이 기술력을 다투고 있는 가운데, 한국어 감성을 이해하는 플랫폼 ‘조나단’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조나단 개발사 아크릴을 이끄는 박외진 대표는 “왜 우리나라에는 감성 컴퓨팅을 연구하는 전문적 그룹이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조나단 개발 배경을 밝혔다. 그는 “한국어로 된 감정을 인식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해 이미 나온 외국 기술은 쓸 수 없었다”며 “조나단은 한국어 기반의 국내 최초 감성 AI”라고 소개했다.

조나단은 아크릴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감성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 모델에는 기쁨 슬픔 분노 등 사람이 가지는 기본적 감정 30여가지를 기본으로 두고 특정 주제, 단어가 이 감정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박 대표는 “’배고프다’라는 문장에는 괴로움 짜증남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며 “배고프다는 문장과 상관이 높은 감정들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가다 보면 규칙이나 패턴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규칙을 배워나가는 AI는 ‘배고프다’고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흉내 내 공감해 주거나 앞으로 어떤 감정으로 변할지 예측해 반응한다.

“목소리ㆍ말투로 감성 분석해
음식 추천하는 수준이 목표죠”

현재 조나단의 수준은 ▦화자의 감정 상태 ▦주요 단어 ▦핵심 주제 ▦화자의 성별 및 연령대를 분석하는 정도다. 이날 ‘취직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정말 산 넘어 산이야’라는 문장에 대해 조나단은 안타까움(80.27%) 슬픔(15.45%) 등으로 화자의 감성을 파악했고 연령대는 20대(25.64%) 30대(25.84%)일 것이로 추측했다. ‘대박! 방탄소년단이 빌보드200에서 1위 했대, 한국 가수 최초 아님?’이란 말에는 여성(74.14%)일 가능성이 높고 연령대 분석에선 10대(44.94%)와 20대(23.06%)가 가장 높게 나왔다. 기계는 파악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던 비꼬는 문장 ‘넌 매번 10분씩 늦더라’에서도 싫음(37.34%) 짜증남(10.14%)을 읽어냈다.

조나단 개발에는 5, 6년 정도가 걸렸다. 박 대표는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려면 인문학자 심리학자 등의 연구 결과가 굉장히 중요해 개발 초기에는 전문가그룹과 협업하면서 감성 모델을 구축했다”며 “초기 조나단에 투입된 감성 관련 데이터만 20만건”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분석 모델이 안정화돼 영어 중국어의 긍정ㆍ부정적 감정도 이해할 수 있다. 향후 다국어 기능도 추가될 예정이다.

요즘 AI 스피커로 익숙한 기술 수준과 감성 AI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박 대표는 “개인화”를 꼽았다. 입력된 문제와 답을 가지고 사람의 말에 정답만 내놓는 기술로는 개개인 맞춤형 접근을 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LG전자가 지난 3월 아크릴에 10억원을 투자한 이유도 이용자와 공감하는 차세대 AI 기반 제품들을 내놓기 위해서다. SK그룹은 아크릴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기업 고객을 위한 맞춤형 AI를 만들어 주는 사업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는 아크릴의 도움으로 고객들이 어떤 업무를 볼 때 가장 많이 불만을 느끼는지 등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박 대표는 궁극적 AI에 관해 “사람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걸 알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 뜻 없는 말에도 목소리나 말투의 짜증스러움을 알아채고 이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먹는 음식을 추천하는 수준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대표는 “지금 대부분의 AI는 지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사람처럼 공감해 주는 AI를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감성 분석이 그 출발점”이라며 “아크릴의 장기적 목표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AI를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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