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독재와 반공의 유물 외엔 남아있지 않은 듯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당사를 떠나고 있다. 오대근기자

이건 정당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친박·비박으로 갈려 침몰하는 난파선의 키를 서로 잡겠다고 육박전을 벌이는 풍경이 참으로 처참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119신고 1시간30여분 뒤인) 오전 10시20분에야 청와대 침실로 대통령 보고가 전달된 장면이 보수정권이 나라를 거덜 낸 최후의 풍경이었다면, 6·13지방선거를 통해 바닥을 드러낸 자유한국당은 한낱 붕당(朋黨)의 모습이다.

마지막은 홍준표 전 대표가 강렬하게 장식했다. 퇴진을 요구받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거친 언사를 내뱉는 모습에서 같은 이념과 정책적 가치를 추구하는 동지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저급한 정치문화가 당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한국당에겐 이제 독재와 반공의 유물 외엔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이처럼 추락한 원인 중 하나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화의 자산을 포기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는 YS가 15대 총선 때 발탁했고, 김무성 의원은 상도동계 막내로 민주화 투쟁 시절 YS의 야당정치를 현장에서 수행했다. 서청원 의원은 5공화국 관제야당인 민한당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후에 상도동에 합류했다. 이들은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류의 군사독재 후예들이 아니었다.

YS가 누구인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만든 주역이다. 당시 한국사회를 피라미드 구조물로 본다면 꼭지점이던 하나회라는 군 사조직을 일거에 숙청해냈다. 30년간 한국 정치의 상수였던 군의 정치개입을 단 몇 달만의 개혁으로 없애버린 인물이다. 지금 정치가 혼란스러워 군이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걱정하는 국민이 단 1명이라도 있을까.

그런 YS와 함께 했던 두 사람의 이후 행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김무성 의원은 극우의 키워드가 됐고, 정계원로 서청원 의원은 이회창 총재 시절을 거쳐 박근혜 호위무사의 상징인물처럼 됐다. 보수정당의 실체가 민주화 진영에서 넘어온 배신과 변절, 이합집산 외에 그 무엇이 남아있나.

수구적 안보관도 빼놓을 수 없다. 본보는 지방선거 후 ‘보수(保守)를 보수(補修)하라’(18~22일자) 기획을 내보냈다. 대담 코너에서 ‘트럼프-김정은 만남’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 속에 안보라는 목표만 존재할 뿐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취지의 김용태 의원의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그 동안 북한을 소멸시켜야 하는 적으로만 인식했으며, 냉혹하게 보수의 신안보가치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문제를 깡그리 민주당쪽의 담론으로 방치했다.

위장평화쇼라며 변죽만 울릴게 아니라 ‘강한 압박 덕분에 김정은이 기어 나왔다’고 당당히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핵화 수순의 현실적인 재정지원 문제 등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한반도 운명과 관련된 이슈가 어찌 진보나 보수 일방의 전유물이 될 수 있나. 한반도 담론을 포기하면서 선거는 애초에 끝난 게임이었다.

쇄신의 주체, 획기적인 혁신안, 동력조차 보이지 않는 한국당은 매우 암울하다. 이를 주도할 양심적인 중립지대도 없다. 진영은 다르지만 2001년 민주당 정풍운동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여권 실세였던 권노갑 ‘2선후퇴’요구가 터져나온 후 조세형 상임고문이 당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아 2개월만에 위기를 정리한 사례가 있다. 당무위원, 지구당위원장 등 300여명을 1대1 면담했고 당 싱크탱크에선 유럽 각국의 전당대회 운용을 조사했다. 국민참여 경선제, 대권과 당권분리 등을 담은 혁신안은 얼마 후 노무현을 탄생시켰다.

한국당이 해낼 수 있을까. 촛불혁명으로 달궈진 보수에 대한 분노가 이쯤에서 가라앉을까. 내세울 이념도 비전도 희생도 없는 현재의 파당으론 감히 보수의 정치적 재기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

박석원 정치부 차장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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