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졌지만 괜찮다...낙선자들이 울지만은 않는 이유

# ‘생초보’ 고은영 녹색당 제주 후보
제1 야당 한국당 누르고 3위 자리
“제주 감시 새 동력 얻었다” 소감
# 현수막 찢겨 나간 신지예 서울 후보
“실패로 용기… 용감한 첫 걸음”
무소속 차윤주 “낙선하니 알아 줘”
# TK 도전 허대만 민주당 포항 후보
“이제는 해 볼 만 하다” 격려에 힘
# 허철회 바른미래당 세종 후보
“시민 속에서 다시 나갈 것” 약속
6ㆍ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고은영 녹색당 전 후보가 당을 상징하는 녹색 재킷과 운동화를 신고 유세를 벌이고 있다. 고은영 전 후보 캠프 제공

5,284명. 지난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이들의 수다. 당연히 당선자보다 낙선자가 더 많았다.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울지만은 않는 이유는 뭘까.

제주지사 선거에 뛰어든 고은영(32) 녹색당 전 후보도 그들 중 한 명. 난개발로 망가지는 제주를 지키겠다는 당찬 각오로 첫 여성 제주지사 후보로 나선 그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3위(1만2,188표ㆍ3.53%)를 차지했다. 불과 8,9개월 전만 해도 정치라고는 아무것도 몰랐던 ‘생초보’ 정치인이었던 30대 여성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비록 낙선했지만 사실상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씨는 2014년 10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이주했다. 언론홍보대행사에서 체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 대신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제주를 선택했다. 그러나 막상 내려와보니 제주는 성장을 위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제주가 재앙이 길로 가는 데 브레이크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제주에 ‘괸당(친척 또는 이웃을 뜻하는 제주어)’도 없고, 돈도 없는 이주청년이 할 수 있는 거의 없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사회활동가로 지역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5월부터 녹색당 활동을 시작했고, 이어 지난 2월 1일 시민경선방식을 통해 녹색당 제주지사 후보로 선출돼 5개월 12일간 소위 선거 전문가 한 명 없이 당원들과 함께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선거를 치렀다.

고씨는 “녹색당원들과 국민들이 모아 준 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보면서 후보로서 큰 책임을 느꼈다”며 “이 때문에 선거기간 내내 열심히 뛰어다녔고 조금씩 알아봐주고 응원해주는 도민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저나 선거운동원 모두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목소리를 냈고, 우리가 선택한 방식으로 끝까지 완주해내면서 스스로 대견스럽고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거 끝나고 남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녹색당 상징인 하나뿐인 녹색 운동화를 수개월 동안 한번도 빨지 못한 채 신고 다녀 생긴 무좀이고, 또 하나는 제주를 지키기 위해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를 감시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얻어낸 것”이라며 “앞으로 제2, 제3의 고은영이 제주사회에서 일상정치를 펴나갈 수 있게 도민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지예 녹색당 전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동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여성정치 발전비 유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에 고은영 전 후보가 있다면 서울에서는 같은 당 신지예(27) 전 서울시장 후보도 ‘깜짝’ 4위(8만2,874표ㆍ1.7%)를 차지하면서 ‘작은 파란’을 일으켰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씨는 선거기간 내내 주목을 받았다. 그의 벽보 포스터에 대해 한 유명 변호사가 ‘시건방지다’라고 표현하면서 그의 벽보나 현수막이 수십 차례 찢겨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신씨는 “이번 선거에서 제가 보이고 싶었던 것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서울시민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 정치를 열망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성 평등 이슈가 몇 년간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였지만 정치권은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불법 촬영물, 낙태죄, 성차별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6년 총선 때 녹색당 비례대표로도 출마해 낙선했던 그는 “두 번의 선거 실패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페미니스트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면서 후보로 나올 때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유세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시는 것을 느꼈다”며 “2018년 지방선거는 페미니즘 정치의 용감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6ㆍ13 지방선거 서울 마포구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한 무소속 차윤주 전 후보의 유세 당시 모습. 차윤주 전 후보 제공.

서울시 구의원(마포 나)으로 출마했다 떨어진 차윤주(36)씨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낙선인사를 하고 있는 그에게 많은 이들이 “다음에 나오면 무조건 1등”이라는 말을 건넸다. ‘안 됐다’는 위로보다는 ‘다시 출마하라’는 독려의 의미였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18.57%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2명이 당선되는 선거구에서 2위 자유한국당 이민석 당선인과 불과 302표 차이였다. 아무리 석패라 해도 선거에 진 정치인들은 좌절하기 마련이지만, 차 전 후보는 달랐다. 소기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12년간 기자생활을 한 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구의원(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 ‘우리 동네’부터 바꿔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뜻 맞는 청년 5,6명이 모여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무소속 후보 4명이 각 지역구에 출마했다.

차씨의 공약은 거창하지 않았다. ‘세금으로 해외여행을 가지 않겠다’ ‘동네 일식집에서 의정 활동비를 쓰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선거비용도 거대 정당 후보의 절반 수준을 썼고, 선거유세차도 트럭이 아닌 경차를 사용했다.

그는 “낙선하고 나니 더 많은 사람이 알아본다”며 “이번 선거과정이 지방자치, 더 크게는 현실 정치에 시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해 이를 책으로 묶어 기록을 남겨둘 생각이며, 4년 후 선거 출마 여부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김명진 민주평화당 광주 서갑 지역위원장이 6ㆍ13 전국동시 지방선거 다음날인 14일 광주 서구 양동경로당을 찾아 낙선인사를 하던 중 가수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를 부르자 한 유권자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명진 전 후보 선거캠프 제공

낙선의 쓴맛도 잊은 채 2년 혹은 4년 후의 미래를 그리며 다시 유권자 속으로 파고 드는 이들도 있다. 광주 서갑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김명진(54) 민주평화당 지역위원장은 선거 다음날인 14일 새벽 5시부터 양동시장을 시작으로 유세차까지 동원해 매일 지역구 전역을 돌며 낙선인사를 다녔다.

김 위원장은 “깨끗한 선거를 치른다는 약속을 지켰고, 지지율 바닥에서 무모하게 시작해 마지막까지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끝까지 버티고 이겨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후회도 여한도 없다”며 “지역 민심에 뛰어들어 호흡하는 재미가 있었고, 다음 선거까지 남은 670일 동안 낙선인사를 한다는 자세로 유권자들을 만나며 ‘힐링’과 위로를 받고 있어 낙심, 낙담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 출사표를 던졌지만 중앙당의 전략공천으로 뜻을 접는가 하면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오랫동안 출마를 준비했지만 예비후보가 아닌 후보로 유권자를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그에게 낙선이 좌절만은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바로 당선되는 사람들보다 여러 번 떨어지고 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이런 도전의 과정 자체가 정치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는 우리 당이 어려운 선거구도였기 때문에 더 도전의지가 컸고, 당을 위해 선방한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고 다시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경북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전 후보가 유세차량을 타고 시내를 돌며 시민들에게 낙선인사를 하고 있다. 허대만 전 후보 선거캠프 제공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허대만(49) 전 후보도 이번 선거에 낙선하면서 1승 5패의 전적에 1패를 추가 시켰다. 26세의 나이로 지난 1995년 처음 도전한 포항시의회 선거에 당선된 이후 20년간 패배만 맛봤다. ‘과메기도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보수의 텃밭에서 줄곧 민주당을 고집한 결과였다.

허씨는 낙선하면 이번 선거를 끝으로 정치활동을 접을 생각이었다. 아직 포기하기 이른 나이지만 민주당 험지인 포항에서 더는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선거 당일 개표가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뒤돌아서던 그를 캠프 운동원들이 붙잡았다. 낙심한 허 전 후보에게 이들은 하나같이 “이제는 해 볼만 하지 않느냐”는 말을 건넸다. 그는 과거 다섯 번의 선거에서 20%의 득표율도 얻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무려 42.41%를 얻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2년 뒤 있을 총선 출마를 결심하고 선거 후 곧장 유세차량에 올라 포항시내 곳곳을 돌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 이상 지났지만 포항 남구 상대동에 자리한 그의 허름한 개인 사무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허씨는 “포항시장에는 떨어졌지만 이번 선거에 경북도의원 2명과 포항시의원 10명이 당선됐다”며 “당원들과 함께 전열을 가다듬어 앞으로 있을 선거를 위해 힘차게 또 달려보겠다”고 말했다.

6ㆍ13 지방선거에서 세종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한 허철회 바른미래당 전 후보가 시청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허철회 전 후보 캠프 제공

어릴 적부터 시장이 꿈이었던 허철회(38) 바른미래당 전 세종시장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4년 뒤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어릴 적 천안시장 관사 옆에 살았던 허씨는 “매일 출퇴근하는 시장을 보며 아버지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시민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나도 시장처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당시 남경필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턴비서로 정치판에 첫 발을 들였고,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과 여의도 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거쳐 세종시로 내려와 2016년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지만 컷오프됐다.

첫 선거에서 낙선이 확정된 직후 허씨는 “시민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라며 “앞으로 2년, 3년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유대관계를 쌓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 선거에 다시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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