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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적군 묘지

입력
2018.06.24 10:00
수정
2018.06.25 06:5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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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시인 구상이 ‘적군묘지 앞에서’라는 이 시를 담은 시집 ‘초토의 시’를 낸 것은 1956년이다. 휴전 되고 얼마 안됐지만 격전지에서 수습한 적군 유해를 모은 묘지가 전국 여기저기 있던 때였다.

▦정부는 그 묘지들을 제네바협약에 따라 1996년 파주군 적성면 답곡리에 한데 모았다. 육군 25사단이 관리하는 ‘북한군ㆍ중국군 묘지’다. 묘역 일부는 지금 휑한 빈 자리로 남아 있다. 묻혀 있던 중국군 유해가 한중간 합의로 2014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송환식을 거쳐 중국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중국군 유해 환송은 1980년대 초부터 몇 차례 있었지만 이를 중개했던 북한이 2000년 돌연 거부하면서 중단되었다. 첫 해 437구로 시작해 최근 제5차 송환까지 중국으로 간 589구의 유해는 선양(瀋陽)의 묘역에 안치되었다.

▦북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대로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을 시작했다. 북미간 유해 송환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바라던 북한은 1990년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 5구 보낸 것을 시작으로 1994년까지 모두 208구의 미군 유해를 돌려보냈다. 2005년까지 북미 공동유해발굴작업까지 진행해 229구의 유해를 추가로 수습했고, 이번에는 한번에 200구 정도를 송환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숨진 미군이 4,100명 정도라니 세월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성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쟁 당사자이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국군과 북한군 유해는 아직 본격적으로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은 2007년 장관급회담에서 비무장지대 공동 유해 발굴ㆍ송환에 합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국방부는 비무장지대에서 전사한 국군만 1만 명을 넘는 것으로 본다. 전사자 유해발굴감식단 활동이 시작된 2000년 이후 수습한 북한군 유해는 700구를 넘는다. 파주 ‘적군묘지’의 유해를 북으로 보내고, 남북이 하루빨리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을 진행해 묵은 한국전쟁의 여한을 풀 수 있기를 고대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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