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실물경기, 각종 경제지표 최악
정책목표 맞지만 수단은 틀린 방향
‘소득주도성장’ 유별난 집착 경계를

실물경기를 체감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도로 교통 상황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출근 시간대에 변두리에서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가도 막히지 않았다. 환율 급등으로 휘발유 가격이 올라 웬만해서는 차를 몰 엄두가 나지 않을 때였다. 불가피하게 차를 몰아야 하거나 휘발유 가격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부자들은 오히려 좋았다.

지금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울시내 교통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고 고속도로도 여유로워졌다. 매 주말 지방에 내려가야 할 사정이 있는 직장 동료는 주말 오후 6시쯤이면 어김없이 꽉 막히던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판교-양재 구간이 과거에 비해 한산해진 것이 경기 침체의 신호가 아닐까 우려했다. 또 하나의 체감 지표는 밤거리 불빛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서울 시내는 물론 신도시 동네 상가의 불빛이 현저히 어둡다. 식당에 가보면 종업원이 줄고 가족끼리 경영하는 곳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도 일단락된 데다 선거도 싱겁게 끝나면서 ‘잔치’ 기간의 짜릿한 흥분이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러시아 월드컵 특수도 체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엉망진창인 경제 성적표가 걱정이다. 5월 신규 취업자가 10만명 아래로 무너졌고 청년고용 통계는 최악의 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다. 1분기에는 실업급여 수급자 수가 역대 최고로 올라갔다. 청와대는 애써 부인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일단 시행하되 계도기간을 6개월로 잡았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기업이 처한 환경을 보면 오히려 일자리를 감축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날아간 일자리가 3만 개에 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에 자동차 관세 폭탄을 투하하면 13만 개의 일자리가 위험하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해외투자 유출로 날아간 일자리만 44만 개라고 한다. ‘일자리 정부’라더니 하는 정책마다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올해 말쯤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에 뭐라고 기록될지 궁금하다.

이러는 사이 국민들은 빚더미에 오르고 있다. 올해 1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468조원이다. 부채를 짊어진 가구가 1,000만을 넘는다. 줄잡아 가구당 1억원을 훌쩍 넘는 빚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급격한 소비 여력 위축이 우려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고위험가구가 11만6,000가구에서 46만2,000가구가 된다. 자그마한 도시 규모다. 이들이 대출을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으로 옮기고 있다. 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에 금이 가고 있다는 증거다. 둑이 무너지는 것은 금이 가는 것에서 시작되고, 얼음은 송곳은 물론 바늘에도 깨진다. 경제는 가장 약한 고리부터 망가진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제2금융권 부채에서 시작됐다.

경제가 조금 휘청거려도 여유 계층은 그럭저럭 버틴다. 문제는 경기 변동의 주요 피해자가 취약 계층이라는 점이다. 호황기에는 물가도 오르지만 부동산가격이 치솟아 전ㆍ월세가 줄줄이 오른다. 지금처럼 불황기로 접어들면 기업이 도산하고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런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바로잡지 못하면 정부 실패로 이어진다.

경제학자 이정전은 저서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에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국민이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그것을 충족할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목표와 수단이다. 문재인 정부는 목표는 올바로 찾았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국민 소득을 올려주고 삶의 여유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반면 수단을 찾는 것은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가 뭘까. 경제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허구적 개념에 과잉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담아들어야 할 지적이라 긴 얘기가 필요 없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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