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 읽어? <7>

# 중학교 시절 선생님 덕분에 詩 외우고 기록하면서 언어의 뉘앙스 알게 돼
조광희 변호사와 김민정 시인이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나 책 이야기를 했다. 홍인기 기자

내가 썼지만 이 구절은 참 마음에 들더라 하는 대목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했더니 이내 그는 자신의 책에서 287쪽을 펼쳐 내게 내밀었다. 가리키는 손끝에 분명 수줍음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 이런 문장이 들어앉아 있었다. “여러분은 어떠한 가치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절망하지 말고, 그것을 다행으로 받아들여라. 그것은 여러분이 자유라는 뜻이다.” 자유, 자유라 하니 어디선가 읽은 듯한 DH 로렌스의 글이 순간 오버랩 됐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만 자유롭다. 그 자유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 뛰어드는 것이다.” 1966년생 현직 변호사의 첫 장편소설이자 첫 산문집을 두고 본다면 그래, 이쯤이면 그는 뛰어든 자라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민정(이하 김)= “얼마 전 장편소설 ‘리셋’과 산문집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 두 권을 동시에 펴내셨어요. ‘현직 변호사인 작가는 법조계만이 아니라 영화계 및 문학판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약력 중 일부가 이렇던데, 보통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조광희= “아아 저요? 변호사 일을 하는 조광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 같은데요(웃음)? 어쨌든 주된 업은 변호사니까요. 어쩌다 스케줄이 맞아 두 권을 함께 출간하게 되었는데요, 산문은 다소 주제가 좀 무거운 편이고 소설은 쉽게들 술술 잘 읽힌대요. 한 서너 시간이면 다 읽으실 거예요.”

김= “‘리셋’ 목차 보고 수열 나열한 줄 알았다니까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포함해서 총 30 챕터인데 제목 없이 숫자만 쓰셨더라고요.”

조= “일주일에 두 챕터를 쓴다 하고 30 챕터를 완성한 거거든요. 주중에 한 챕터, 주말에 한 챕터, 그렇게 두 챕터씩 쓰면 15주 안에 완성이 되잖아요. 네, 맞습니다, 계산을 치밀하게 해서 썼어요. 소설에서 문장의 영역이 중요하긴 한데 일부러라도 미문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실현이니까요.”

조광희 변호사는 주말마다 서울 남산도서관에 간다. "아주 열렬한, 호들갑스러운 기쁨을 주는 건 아니지만 산책하듯이 들르곤 하는데 행복하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학생시절엔 늘 머리맡에

김= “책이면 책,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법조계에 계신 분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요즘입니다.”

조= “일단 변호사들의 수가 크게 늘었어요. 저 때만 해도 한 해에 한 300명 뽑았는데 요즘은 1,000명씩 뽑으니까요. 전에는 법률 드라마를 하려고 해도 그걸 자문해줄 변호사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변호사가 많은 겁니다. 무엇보다 사회의 시스템이 자리를 좀 잡으면서 문제 해결 방식으로 법률적인 공방이 계속되니 활용하기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고요. 게다가 리버럴해진 사회잖아요. 전에도 물론 글 쓰는 법조인들이 있었지만 창작의 영역까지 그 활약상이 크게 확장된 것 같아요.”

김= “‘리셋’의 경우 영화 판권 문의도 혹 왔는지요.”

조= “몇 군데 얘기 중이긴 한데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어요. 살짝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정도고요.”

김= “책이 4월에 나왔던데 벌써요? 역시나 영화판은 이야기를 탐하는 데 있어 그 속도가 빠르군요. 영화계에서는 제작 일을 하신 거지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을 겸하고 계신데요.”

조= “1990년대 말이었나, 제가 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아시는 분들이 알음알음 저한테 법률적인 자문을 구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오셨어요.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제가 몇몇이랑 영화동아리를 만들 만큼 영화를 좋아하긴 했거든요. 아무튼 그 당시 영화계 이슈는 ‘검열’이었거든요.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게 되게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리고 법률적인 싸움을 통해 이를 제거한다는 그게 되게 고무적인 사건이잖아요. 그래서 도와줬고, 그러다 친해졌는데, 나중에 그들이 돈을 벌어 영화사를 차리더니 저더러 와서 좀 해 볼래, 하는 거예요. 인생 뭐 있나, 변호사 휴직하고 한 3년 영화사에 나갔던 거죠.”

김= “몸에 잘 맞는 옷이던가요? 영화 일 말이에요.”

조= “잘 맞지 않았어요. 주로 제가 하는 일이 영화를 제작할 돈을 어디선가 구해 오는 건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법무법인 원에서 영화 자문하는 걸로 먹고삽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영화 관련 일이 한 80%쯤 되는 듯해요. 제작사나 감독님들이나 투자사의 계약 관계나 분쟁 같은 데 관여하지요. 주로 그 일을 하는 변호사로 알려져서 다행히 밥술을 뜨고 삽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다만 일이 재밌고요, 비교적 우아하게 일할 수 있는 편이라서 만족하고 있어요.”

김민정 시인. 홍인기 기자
# 블로그·SNS 돌아다니면서 관심 도서 메모, 도서관서 대여 구매는 되도록 e북으로

김= “일찌감치 법대생을 꿈꿨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조= “원래는 경제학과에 가고 싶어 했죠. 아버지의 권유로 법대에 가긴 했는데 잘 안 맞았어요. 대학 2학년 때쯤 정치적인 상황에 눈을 떴는데 운동가로 나서기에는 다소 늦었다 싶었고, 용기도 부족했고, 그때 특별한 주제 없이 당시 유행하던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이문열의 소설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또 전혜린의 책들까지. 그러다 나름의 타협을 한 게 일단 변호사가 되자, 그런 다음 인권운동 관련한 일을 하자, 하는 결심이었어요. 정의감은 모르겠는데 타인에 대한 안쓰러움이랄까, 공감 능력은 좀 팽팽해 있었던 것 같아요.”

김= “법전 파기도 바쁘셨을 텐데 잡식성 독서에 재미를 보셨었군요!”

조=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 덕분에 시를 아주 많이 읽던 때가 있었어요. 어떤 시든 일단 다 외우게 하셨거든요. 각자 장부를 만들어서 외운 시가 뭐다, 그걸 기록하게 하셨어요. 어떤 시집이든 상관없었어요. 지금 외워보라고요? 약간의 시간만 주시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웃음). 그때 처음으로 ‘언어’라는 것의 뉘앙스를 알게 됐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직관적으로 어떤 리듬이 좋은 건지 아닌지 판단력이 생긴 것 같아요. 시인으로는 조지훈 선생 좋아했는데요, 시로는 김광균 선생의 ‘와사등’이 기억나요. 왜, 도시의 어둡고 쓸쓸한 정서 있잖아요.”

김= “시 말고요, 지난날의 나다, 그러면 왜 스멀스멀 떠오르는 책 같은 거 있지 않나요?”

조=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요. 이상하게 저는 그 책이 좋았어요. 대학 다닐 때도 그렇고 대학원 다닐 때도 그렇고 머리맡에 늘 그 책을 두고 잤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왜 그렇게 나 같던지. 요즘도 가끔씩 아무 데나 펼쳐보곤 해요.”

김= “‘개선문’이라… 얼마 만에 듣는 제목인지요. 간만에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싶은데요, 저는 보통 이렇게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으면 찜, 하고 잽싸게 책을 사서 보는 편인데 변호사님은 어떠신지요.”

조= “저는 그 유명한 ‘로자’님의 블로그를 구독하거든요. 매일 한 번은 꼭 들어갑니다. 거기 서치해 두신 책들 보고 관심 가는 건 메모를 해 둡니다. SNS에 올라오는 책들도 눈여겨봐 두죠. 제가 주말마다 남산도서관에 가는데요, 간 김에 메모한 책들 찾아보기도 하고 평일에는 점심 먹고 사무실 근처 강남교보문고에 가서 책들 뒤적거리기도 합니다. 되도록 살 책은 전자책으로 사는 편이고요.”

김= “그나저나 주말마다 남산도서관엘 다니신다고요?”

조= “아주 열렬한, 호들갑스러운 기쁨을 주는 건 아니지만 산책하듯이 들르곤 하는데 행복해요. 지난 주말에도 갔는걸요. 거기서 본 책이요? 음, 제목이 기억 안 나는데, 아무튼 시간에 관한 물리학 책이었어요.”

김= “요즘은 무슨 책 읽으세요?”

조=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부터 말씀을 드릴게요. 이 책의 부제가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인데 이야기가 재미와 쾌감만 주는 게 아니라 삶의 어려운 문제들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면서 스토리텔링의 본능을 밝히는 책이에요. 또 한 권은 FL 루카스가 1955년에 출간한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이란 책인데 글쓰기 지침의 고전이랄까요. 제가 산문집을 내고 그러다 보니 읽을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트럼프 관련 저작 중에 ‘트럼프처럼 협상하라’라는 책이 있어요. 도널드 트럼프의 자문 변호사가 쓴 협상의 방법론에 관한 책인데 그다지 특별할 만한 트럼프의 전략은 안 보이더라고요. ‘거래의 기술’이라고, 트럼프가 직접 쓴 책도 있는데 이미 여러 사람이 대출을 해 가서 아직 못 봤어요. 보유 도서가 몽땅 다 대출 중이라는 건 그만큼 ‘핫’하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김= “아차차, 아까 여쭤본다는 것이 책 얘기하다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렸어요. 변호사님은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어떤 변호사이신 것 같으세요? 말이 좀 이상하지만요.”

조= “글쎄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남의 이야기를 일단 잘 들어주기는 하는데요 뭐, 저보다 더 잘 들어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예컨대 이혼 사건 같은 건 정말 잘 들어드려야 하거든요. 근데 또 저는 세심하게 남의 가정사 듣는 걸 잘 못하거든요. 다만 저는 어떤 사태를 온전히 그 사태로 보아주는 사람이긴 한 것 같아요. 제 주관이 개입하는 걸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요.”

김= “너무 건조하신 거 아닙니까. 물론 나이 들어감이란 게 그런 물기 마름이라 하겠지만요.”

조=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평정을 유지하는 그런 사람으로 늙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러려면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어쩔 수 없어요. 혼자만의 고독도 견뎌야 하고, 사람들의 서운함도 잘 빗겨가야 합니다. 책만이 그런 지혜를 일러주는 것 같아요. 책이 그럴 수 있는 힘을 자연스럽게 길러주는 것 같아요.”

김= “그럼에도 꿈이 있어야 청춘 아니겠습니까.”

조= “평생 변호사이면서 작가로 불리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너무 큰 꿈인가요? 변호사는 정년이 없습니다. 법정에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죠. 작가도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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