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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공CD 팔던 흙수저 청년, 알리바바-아마존과 겨루다

입력
2018.06.23 10:00
수정
2018.06.24 14: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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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자본금 200만원 구멍가게

정찰제 정품 고집하며 사업 확장

사스 계기 온라인 판매로 눈 돌려

알리바바 등 거인 이미 시장 장악

이윤보다 매출 늘려 급성장 베팅

당일 익일 배송으로 혁신도 주도

대물 1조원 넘어 7년간 36배 성장

작년 순손실 크게 줄어 흑자 기대

AI 드론으로 100% 자동화 꿈 꿔

류창둥 징둥닷컴 창업자 겸 회장. 징둥닷컴 제공
류창둥 징둥닷컴 창업자 겸 회장. 징둥닷컴 제공

구글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중국 1위 기업 알리바바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18일(현지시각) 중국 제2의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京東ㆍJD)닷컴에 5억5,000만달러(약6,000억원)를 투자했다고 밝힌 것이다. 구글은 징둥닷컴 투자사이기도 한 월마트를 비롯해 프랑스의 카르푸 등 거대 유통기업들과 잇따라 제휴를 맺으며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 알리바바를 위협할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징둥닷컴은 이번 투자 유치로 중국과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앞다퉈 징둥닷컴과 손을 잡고 있다. 최근 대규모 투자 유치가 결정된 11번가는 중국 징둥닷컴의 해외직구 전문몰인 ‘징둥 월드와이드’에 전문관을 구축할 계획이고, 패션업체인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징둥닷컴과 손잡고 온라인 유통망을 공략하기로 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알리바바가 아닌 징둥닷컴과 함께 사업을 벌이려 하는 이유는 뭘까.

사업가가 된 ‘흙수저’ 시골 청년

징둥닷컴은 알리바바, 아마존, 이베이와 함께 세계 4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꼽힌다. 인터넷이 대중화한 1990년대에 창업한 나머지 세 회사와 달리 징둥닷컴은 2004년에야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후발 업체다. 그러나 성장세는 이들 회사 못지않게 가파르다. 지난해 매출은 62조원이고 고용된 임직원 수만 약 16만명이다. 활동 사용자(1년 사이 최소 1번 이상 구매한 사용자) 수는 3억명을 넘어섰다. 현재 알리바바의 유일한 경쟁 상대다. 물론 격차는 크다. 타오바오와 T몰을 운영 중인 알리바바의 지난해 거래액은 4조8,2000억위안(약 681조원)이었고 징둥닷컴은 1조2,944억위안(약 221조원)을 기록했다. 중국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온라인 시장에선 T몰이 점유율 51% 수준이고 징둥닷컴은 약 33%인 것으로 알려졌다.

징둥닷컴을 창업하고 경영하는 이는 류창둥(劉强東ㆍ44) 징둥그룹 회장이다. 지난해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100대 부호 중 18위(94억달러ㆍ약 10조3,300억원)에 올랐으며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그는 1974년 장쑤(江蘇)성 쑤첸(宿遷)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가 작은 배로 징항(京杭) 대운하를 따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해 외할머니댁에서 살며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을 보살피는 것은 물론 온갖 궂은일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가난한 가정환경은 류창둥이 대학 재학 시절부터 창업을 결심하게 된 주요 원동력이었다. 훗날 징둥닷컴을 만들어 농촌 출신 직원을 많이 고용하고 이들의 복지를 확대한 것도 농민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겪고 봐왔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베이징 명문 런민(人民)대에 진학한 류창둥은 학비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전공은 사회학과였지만 일자리를 얻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시간이 나는 대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대학생 재학 중 첫 창업을 했다. 아버지에게 20만위안(약 3,600만원)을 빌려 베이징에 식당을 차렸지만 몇 달 만에 큰 손실을 보고 문을 닫았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1996년 졸업 후 일본계 건강보조기구 회사인 일본생명에 입사해 2년 만에 빚을 모두 갚고 새로운 창업 자금 1만2,000위안(약 205만원)을 마련한 뒤 곧바로 퇴사했다.

류창둥 회장이 1998년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시장 판매대에 문을 연 전자제품 판매업체 ‘징둥멀티미디어’의 당시 외관. 징둥멀티미디어는 오프라인 사업을 버리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징둥닷컴으로 성장한다. 징둥닷컴 제공
류창둥 회장이 1998년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시장 판매대에 문을 연 전자제품 판매업체 ‘징둥멀티미디어’의 당시 외관. 징둥멀티미디어는 오프라인 사업을 버리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징둥닷컴으로 성장한다. 징둥닷컴 제공

1998년 류창둥은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일컬어지는 중관춘(中關村)의 시장 판매대에 징둥닷컴의 전신인 전자제품 판매업체 ‘징둥멀티미디어’를 열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데이터 저장 장치인 광자기디스크, 공CD 등을 판매하는 1인 업체였다. 정찰제와 정품만을 고집하느라 불법 복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초기엔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단골이 늘면서 5년 만에 지점을 12개로 늘리고 연 매출 9,000만위안(약 153억원)에 이를 만큼 성공을 거뒀다. 당시 중국 오프라인 소매점은 온라인 사업을 고려할 겨를도 없이 날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에 류창둥 역시 전자상거래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베이징에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2003년 초까진 소매점 사업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여겼다.

‘수익보다 성장’ 아마존식 전략으로 베팅

사스 여파는 류창둥에게 신사업 구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스 전염을 우려한 시민들이 외출을 피하자 거리가 한산해지면서 오프라인 소매점의 매출은 급감했고, 징둥도 불과 3주 만에 수억원의 손해를 입으며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베이징에 남은 소수의 직원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류창둥은 인터넷으로 제품을 팔아보자는 의견을 듣고 실행에 나섰다.

초기 형태는 단순했다. 게시판에 공동구매 이벤트를 공지한 뒤 주문을 받아 발송하는 방식이었다. 저가 전략을 밀고 나간 덕에 금세 재고를 털어낼 수 있었던 그는 6개월 뒤 독자적인 온라인쇼핑몰을 구축하기로 하고 2004년 새해 첫날 공식 사이트를 열었다. 그는 오프라인 사업을 접고 온라인에 집중하겠다는 일생일대의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눈에 뻔히 보이는 쉬운 길을 버리고 위험한 모험을 하겠다는 그의 독단적인 결정에 일부 직원들은 사표를 쓰기도 했다.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알리바바 등 신흥 강자들이 속속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창업했다가 몇 년 만에 문을 닫는 회사도 부지기수였다. 창고 관리나 배송 서비스 등 기본 시스템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상태로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징둥이 곧 폐업한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징둥은 ‘흙수저’ 회사였다. 미국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나 중국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처럼 창업자가 IT 부문 엘리트인 것도 아니었고, 참모들 대부분은 시골 출신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류창둥은 이들과 함께 하나씩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회사를 키워나갔다.

매출이 늘자 취급 품목을 전자제품에서 가전제품, 생활용품, 의류, 화장품, 도서 등으로 빠르게 넓혀 갔다. 적자는 계속 불어났지만 그는 수익보다 ‘빠른 성장’을 택했다. 류창둥은 “가치를 창조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수익이 가치보다 낮을 수도 있지만 결국 수익이 가치에서 너무 멀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류창둥 징둥닷컴 회장이 2016년 6월 18일 창립기념일을 맞아 직접 고객에게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 온라인 사업 초기 그는 일손이 부족하자 자신의 승용차로 택배를 배송하기도 했다. 징둥닷컴 제공
류창둥 징둥닷컴 회장이 2016년 6월 18일 창립기념일을 맞아 직접 고객에게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 온라인 사업 초기 그는 일손이 부족하자 자신의 승용차로 택배를 배송하기도 했다. 징둥닷컴 제공

류창둥의 사업 전략은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와 비슷했다. 규모와 품목을 확대해서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며 고객을 늘리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린 것이다. 이윤추구보다 사업확대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또 하나 두 사람이 닮은 건 제품을 매입해 직접 판매하면서 물류센터를 구축해 배송도 책임진다는 점이었다. 이는 직접 매입이 아닌 중개자 역할만 하면서 배송도 외주 물류회사를 활용하는 알리바바와 뚜렷하게 다른 지점이다.

징둥의 전체 거래량 가운데 직매입이 아닌 플랫폼 제공 방식의 B2C 판매도 40%에 이른다. 그러나 징둥은 입점 회사를 엄격하게 고르고 무작위 검사를 통해 철저한 품질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모조품과 ‘짝퉁’ 제품이 넘쳐나는 중국 시장에서 정품만 판매하는 징둥닷컴의 ‘짝퉁 근절’ 정책은 신뢰로 중국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징둥닷컴은 구식 유통망 때문에 대도시에서 시골로 갈수록 제품 가격이 비싸지고 품질은 떨어지는 오프라인 시장의 불평등한 가격 구조도 바꿔놓았다.

징둥의 3대 전략 ‘정품’ ‘저가’ ‘안전배송’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는 자체 물류 배송 시스템 구축으로 완성됐다. 류창둥이 2007년 독자적 물류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을 당시만 해도 중국의 택배 시스템은 엉망이었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확보한 회사가 없어 수많은 소규모 회사들이 지역별로 운송을 담당했고 외진 시골은 배송이 아예 안 되기도 했다. 물건이 도난당하거나 분실되는 일이 다반사였고 아무렇게나 던지고 쌓아두는 바람에 제품이 망가지는 일도 흔했으며 배송에 몇 주씩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0년 징둥은 주문 시간 오전 11시와 밤 11시를 기준으로 각각 당일ㆍ익일 배송을 보장하는 ‘211 배송’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업계에 혁신을 가져왔다.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자칫 이 같은 전략은 회사에 엄청난 재고를 남기고 큰 손실을 유발할 수 있었다. 류창둥은 징둥닷컴의 빅데이터 등 기술력을 고도화해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향후 판매량을 예측해 재고비용을 최소화했다. 그는 인공지능(AI)과 로봇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드론이나 자율주행차 등을 이용한 100% 자동화 기업을 꿈꾸고 있다.

정품 판매, 저렴한 가격, 빠르고 안전한 배송으로 중국 소비자를 사로잡은 징둥닷컴은 미국계 전자상거래업체 뉴에그’, 아마존차이나를 누른 데 이어 중국 최대 온라인서점 ‘당당왕(當當網)’까지 제칠 수 있었다. 류창둥은 2013년 인터넷 도메인명도 ‘360buy.com’에서 ‘jd.com’으로 바꾸고 회사명도 ‘징둥상청(京東商城)’에서 ‘징둥’으로 변경했다. 아마존처럼 단순 소매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2014년에는 알리바바와 쌍벽을 이루는 중국의 SNS, 온라인 게임 최강자인 텐센트가 징둥의 지분 15%를 매입해 최대 주주(현재는 20%)에 오르면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징둥그룹은 이와 함께 인터넷 금융, O2O 서비스, 오프라인 소매점, 물류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징둥의 2005년 매출은 3,000만위안(약 51억원)에 불과했으나 2010년 100억위안(약 1조7,100억원)을 돌파했고, 2013년 693억위안(11조8,500억원)을 기록했다. 다시 4년 만인 지난해는 3,623억위안(약 62조원)으로 5배 이상 뛰었다.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선 뒤에도 7년간 36배나 성장하며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물류 시스템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하고 신사업 투자를 이어가느라 적자가 쌓이고 있다는 것은 징둥의 큰 약점이다. 그나마 2014년 58억위안(약 9,920억원)에 이르던 영업손실을 지난해 8억3,500만위안(약 1,428억원)으로 줄이고, 순손실 규모도 2015년 91억위안(약 1조 5,600억원)에서 지난해 180만위안(약 20억원)으로 축소하며 흑자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5월 22일 류창둥 징둥닷컴 회장이 뉴욕 나스닥 상장 기념 행사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징둥닷컴 제공
2014년 5월 22일 류창둥 징둥닷컴 회장이 뉴욕 나스닥 상장 기념 행사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징둥닷컴 제공

자본금 200만원의 구멍가게에서 20년 만에 16만명이 일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류창둥 회장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 가운데 하나가 조직 관리다. 징둥닷컴은 동종 업계에서도 상당히 센 노동강도로 유명한데 류창둥은 그에 따른 보상과 복지를 제공하면서 동기를 부여했다. 가치관이 능력보다 중요하다면서 징둥의 고유한 조직문화와 가치관을 지키려 애쓰기도 했다. 류창둥의 가치관은 곧 징둥닷컴의 정신이기도 하고, 중국 기업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류창둥은 “중국인은 돈 외에는 행복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젠 우리도 행복 추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그러나 여기서 행복 추구는 국가 복지에 기대는 나태한 행복 추구가 아니라 개인의 혁신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행복 추구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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