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엽기적인 갑질…하지만 영장 청구는 무리였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69)씨가 20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담당 판사는 “구속 수사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씨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달 초 ‘필리핀 가정부의 비밀’이라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69)이 외국인 가사 도우미에게 갑질을 일삼았다는 내용이다. 필리핀인 고용에 대해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마음 편하게 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루 14~16시간씩 고된 일을 하고도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받았다는 가사 도우미 증언도 나왔다.

▦ 이씨에게 청구된 두 번째 구속영장이 20일 기각됐다. 담당 판사는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4일 상습폭행 혐의와 관련된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다. 잇단 기각 사태를 놓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판사들을 비난하고 이씨의 구속을 촉구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재벌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 “돈 없고 불쌍한 시민들이 그 지경이었다면 즉시 구속했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다.

▦ 법률 전문가들 의견은 다르다. 하나같이 영장 청구 자체가 무리였다고 얘기한다. 이씨가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들어온 필리핀인을 가사 도우미로 쓴 것은 명백한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중국인이나 필리핀인 불법 체류자를 가사 도우미로 고용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당국이 일제 단속 한 번만 해도 수천 명의 불법 체류자가 적발되는 게 현실이다. 불법 체류자는 출국 조치하고 고용한 사람은 기껏해야 벌금형 정도에 그친다. 영장이 한 번 기각된 피의자에게 다른 죄목으로 다시 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 이씨의 갑질은 엽기적이다. 폭언 폭행의 정도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재벌 총수 부인이라는 이유로 더 가혹한 법의 잣대가 적용돼선 안 된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형사소송법 상의 대명제이다. 더욱이 이씨 일가는 11차례나 압수수색을 받았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망신 주기식 마녀 사냥으로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가 바뀔 리도 없다. 법은 보수적이고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 법적 안정성과 일관성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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