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 사는 게 장애를 가진 동생의 당연한 삶인가?"

영화 ‘어른이 되면’ 만든 장혜영씨
펀딩으로 목표액 이상 금세 모금
장애 가진 동생 혜정씨와 동거하며
현실서 부딪히는 난관들 담아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캡처

혜정이 웃는다, 혜정이 짜증을 낸다, 혜정이 무아지경으로 춤을 춘다. 혜정은 믹스커피를 좋아한다, 혜정은 친구들과 스티커 사진 찍는 것이 취미다. 혜정은 중증발달장애를 가졌다. 혜정은 13세부터 31세가 될 때까지 18년간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살았다.

제16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이자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에 나오는 장혜정(31)씨는 장애를 가졌다는 것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정체성을 갖는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혜정씨의 한 살 터울 언니이자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장혜영(32)씨. 영화는 혜정씨가 시설에서 나와 혜영씨와 함께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나가는 6개월간의 동거생활을 그린다.

“시설에 사는 게 장애를 가진 동생의 당연한 삶인가, 의문이 들었어요. 시설 생활이 동생에게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시설에 살지 않을 선택 역시 함께 주어져야 ‘자유’라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게 출발이었어요.”

호기롭게 세상으로 나왔지만, 마주치는 현실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24시간 혜정씨 곁에만 있을 수 없어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했지만 등급 심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국민연금공단 직원은 시종일관 혜정씨가 얼마나 ‘무능한 사람’인지 증명해야 하는 질문만 던졌다. 단 한번도 자매가 ‘무엇을 원하고’ ‘얼만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장애인’인지 물어보면 너무 많은 게 이미 규정돼버려요. 이게 결국 장애복지서비스 전반이랑 연결이 되는 건데, 임의의 ‘등급’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예산과 의지가 필요한 거고. 갈 길이 먼 거죠.”

“등급 심사는 무능력 증명만 원해
무얼 얼마나 원하는지 알아 주길”

동거는 자매의 결정이었지만, 영화가 공개되기까지는 전적으로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었다.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 모집) 사이트인 텀블벅으로 제작비 모금을 했는데, 당초 계획인 5,000만원을 훌쩍 넘는 돈이 금세 모였다. 영화 완성 후 ‘공동체 상영’을 할 때마다 사람들의 궁금증, 열과 성은 놀라울 만큼 뜨거웠다. 유튜브로 영화를 공개하자 30개에 달하는 감상문이 날아왔다.

“대부분 장애인에게도 ‘일상’이 있다는 것을, ‘장애’라는 특성을 제외하고도 다른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당혹’이었죠.” 그러나 그 마음이 또한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함께,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상(像)이 없었으니까, 깨끗하게 치워져서 몰랐던 삶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제 두 곳에서 상영한 이후 배급 요청도 들어왔지만 ‘무조건 극장 상영만’을 조건으로 내걸어 거절했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ㆍ장애인 친화적인)’ 극장이 턱없이 모자란 한국 현실에서 극장 배급만을 원칙으로 하면 대다수 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없어서다. 유튜브 결제시스템으로 ‘관람료’를 받으려다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 청소년이나 시설에 사는 사람들은 영화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마저도 그만뒀다.

다행히 이 모든 악조건에도 상영을 하겠다는 곳이 나타났다. 영화사 ‘시네마 달’이 7월부터 전국 극장에 상영하되, 이후에는 유튜브로 공개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7월 9일까지는 유튜브에서, 그 이후부터는 극장에서 ‘어른이 되면’을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장혜영 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카페에서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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