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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으라는 말이 가축 두수 늘리라는 소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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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으라는 말이 가축 두수 늘리라는 소리 같아”

입력
2018.06.21 04:40
수정
2018.06.21 08:4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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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소설 ‘네 이웃의 식탁’ “소설 속 대안인 공동체 육아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한 허상”
구병모 작가는 새 소설 ‘네 이웃의 식탁’에 작가의 말을 쓰지 않았다. “소설 바깥의 제 목소리가 세게 들어가는 게 걱정돼서, 소설을 읽는 바로 당신의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면 좋겠어서 그랬다”고 했다.민음사 제공
구병모 작가는 새 소설 ‘네 이웃의 식탁’에 작가의 말을 쓰지 않았다. “소설 바깥의 제 목소리가 세게 들어가는 게 걱정돼서, 소설을 읽는 바로 당신의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면 좋겠어서 그랬다”고 했다.민음사 제공

아이 많이 낳으라는 말이 가축 두수 늘리라로 들린 게 시작이었다. ‘가임기 여성 출산 지도’ 따위를 만드는 건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세상이라는 뜻이니까. 그래서 ‘오직 재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구병모(41) 작가의 새 소설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은 거기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구 작가를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났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경기도 어디쯤의 공공임대 주택이다. ‘자녀 1명 이상을 이미 낳아 생식 능력이 입증된 42세 이하의 부부’가 기본 입주 요건이다. 임신에 유리하므로, 외벌이 부부는 입주 심사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사는 동안 시험관 시술이 필요하면 정부가 비용을 내 준다. 10년 내 자녀를 셋까지 ‘만들지’ 못하면 방을 빼야 한다. 복지의 이름으로 포장한 ‘아이 낳는 공장’이다. 입주한 부부 네 쌍에게 닥치는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소설의 줄기다.

이토록 으스스한 이야기는 구 작가의 ‘엄마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생의 엄마다. “산부인과의 검사대에 올라가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어떤 자극이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소설 속 문장은 구 작가의 육성이다. 출산 제도에, 출산율이라는 숫자에 여성의 인생은 소거돼 있음을 꼬집었다. “출생률은 인구 한 명당 아이가 태어나는 숫자고, 출산율은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숫자다. 출산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이다.” 구 작가는 그래서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률’로 쓰자고 출판사에 요구했다고 한다.

구 작가의 남편은 ‘회사원’이다. 시간이 많다는 오해를 받는 프리랜서이자 여성인 구 작가가 독박 육아의 피해자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구 작가는 노코멘트라고 했다). 독박 육아의 대안으로 꼽히는 공동체 육아를 소설 속 부부들이 시도하지만, 구 작가는 제대로 굴러가게 두지 않는다. 그는 공동체 자체를 회의한다. 공동체가 성하지 않는 한, 공동체 육아도 허상일 수밖에.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하려면 서로를 사랑으로 보는 게 선결돼야 하는데, 우리가 과연 그런가. 너무 오랜 세월 생명과 사람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뼈저리게 반성하며 죽어 가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나 싶다. 마을 공동 육아를 다룬 책을 봐도, 대개 엄마의 역할을 강조한다. 가정 안에도 돌봄 노동의 부담을 집중적으로 지는 사람이 있는데, 단위가 마을로 커진다고 달라질까.”

소설엔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건강한 대안은 제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에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인 걸 인식하는 게 먼저다. 그게 안 되니 예산을 써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거다. 교육부 관료의 ‘개 돼지’ 발언은 나라 살림하는 분들이 대놓고 국민을 가축으로 본다는 뜻 아닌가.” 소설가가 대안까지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읽고 난 기분이 찜찜하다. 그걸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가미’ ‘위저드 베이커리’ ‘파과’ 등 전작에서 환상성을 좇은 구 작가의 새 소설은 사회소설 혹은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 것이다. 여성을 ‘선한 피해자’로 보지 않는 건 여느 페미니즘 소설과 다르다. “여성, 남성 중 한쪽의 편을 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반성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긴 우리는 자연에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인지도 모른다(웃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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