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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여성 생리 중 격리 악습’ 법으로 고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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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여성 생리 중 격리 악습’ 법으로 고쳐질까

입력
2018.06.22 14:49
수정
2018.06.23 00:2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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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호랑이 들어온다” 이유로

여성들 가족과도 차단시켜

임시 움막서 지내다 숨지기도

8월부터 금지법… 변화는 불투명

생리 기간 중 오두막에 격리돼 생활하고 있는 네팔 여성들. 글로벌기빙 홈페이지 캡처
생리 기간 중 오두막에 격리돼 생활하고 있는 네팔 여성들. 글로벌기빙 홈페이지 캡처

올 8월부터 네팔에서 ‘차우파디’를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다. 차우파디는 네팔어로 ‘불경한 존재’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생리 중인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말한다. 네팔에서는 생리 중인 여성과 접촉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 때문에, 이 기간 외부인은 물론이고 가족으로부터도 격리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2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네팔에서 매년 최소 1명 이상 여성이 생리 기간 스스로를 공동체와 격리시켜 생활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고 있다. 밤이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여서 해당 여성이 임시 움막에서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웠다가 연기를 과다하게 흡입해 죽기도 하고, 야생동물 습격으로 희생되기도 한다. 지난 1월 가우리 쿠마리 바야크라는 여인의 경우 ‘차우파디’ 때문에 오두막에서 며칠 머물다 연기에 질식돼 사망했고, 최근 또 다른 여성은 뱀에 물려 숨졌다.

빈부와 상관없이 네팔 여성들은 사회적 압박과 죄책감 때문에 생리 기간 집에서 나와 오두막, 외양간 등에서 지내야 한다. 생리 기간에는 오염된 존재로 간주 돼 가축을 만질 수 없으며 요리를 해서도 안 된다. 이 지역의 한 남성은 NYT에 “생리 중인 여성이 집에 들어오면 나쁜 일이 발생한다. 호랑이가 온다거나, 집이 불타는 등 머리 아픈 일이 생긴다”며 스스럼없이 여성들을 격리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여성인 그의 조카도 당연하다는 듯 “집에서 나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혹시나 나 때문에 부모님이 아프거나 하는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는다”며 수용적이고 체념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차우파디’ 법의 시행 등 악습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긴 하지만, 오랜 편견을 깨기엔 아직 역부족인 모습이다. 며느리를 잃은 후 ‘차우파디’격리용 오두막도 부순, 바야크의 시아버지 댐바 부다는 “생리 중인 아내를 집에서 자게 해도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네 딸도 억울하게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해도 쉽게 마음을 고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네팔 서부 작은 산간 마을에서 태어난 후 수도 카트만두에서 20년을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온 다르마 라지 카데이엣은 ‘차우파디’가 농촌 지역에서 만연한 것을 보고 동네사람들을 설득했지만 벽에 부딪혔다고 토로했다. 카데이엣은 “몇 년 전 마을 입구에서 생리 기간 중 오두막으로 가기 싫은 여성들은 우리 집으로 와도 된다고 말했다가 다른 남성들로부터 ‘술에 취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애꿎은 죽음과 국제사회의 비판에 네팔 정부가 8월부터 ‘차우파디’ 금지법을 시행하고, 이를 강요한 사람에게는 3개월 징역형을 가하겠다고 나섰지만 악습이 사라질지는 불확실하다. 네팔 지역 여성 권리 운동가인 페마 라키는 AFP통신에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도 문제지만, 이를 스스로 따르는 여성들도 많기 때문에 세대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진 악습이 유지될 가능성이높다”고 아쉬워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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