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한 주였다. 12일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분단 70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날 있었던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야당이 전례 없는 참패를 기록함으로써 국내 정치지형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

일부 국내 언론과 미 주류 언론들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싱가포르 합의문에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arization)만 명시되었을 뿐, 검증가능하고(Verifiable) 비가역적(Irreversible)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과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계획이 없다는 점을 들어 회담 결과를 혹평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회담을 실무에서 이끈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싱가포르 회담 전부터 CVID가 미국의 마지노선이라는 취지로 계속 얘기해 온 터라 언론과 소위 전문가들의 이런 혹평은 어느 정도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자업자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CVID는 좀 모순적이다. 만약 완전한 비핵화로도 모자라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비핵화가 필요하다면, 처음 말했던 ‘완전한’이라는 말은 사실상 완전하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즉, CVID의 C가 C 자신만으로 부족하다면 C는 더 이상 Complete가 아니라 Incomplete이다. 그러니까 CVID는 CVID라고 쓰는 순간 더 이상 CVID가 아니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애초에 CVID라는 작명 자체가 논리적으로 엉터리인 셈이다. 이 말을 처음 만들었다는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예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라고 한다. 볼턴의 Complete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오묘한 뜻이 있는 걸까?

그럼에도 CVID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줄 여지는 있다. V나 I는 C와 추상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V는 완전한 비핵화를 어떻게(how) 할 것인가, 즉 CD를 위한 수단 내지 방식의 문제에 대한 답이다. I는 완전한 비핵화의 수준, 즉 어느 정도까지(to what extent) 조치를 취해야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되었다고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러니까 CVID를 풀어서 쓰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완전한 비핵화를 하자는 얘기이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CD이다. V나 I는 CD를 위한 세부사항일 뿐이다. 회담 직후 폼페이오 장관이 완전한 비핵화에 다 들어가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계약서에 너무 세세한 사항까지 명시하면 그게 오히려 서로에게 나중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 합의문에 굳이 그런 내용은 넣지 않아도 된다.

세부사항 합의는 원래 쉽지 않다. 비가역적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북한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조치를 취해야 비가역적인 비핵화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핵무기와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는 것을 넘어 관련 과학기술자들을 모두 분산시켜 다른 직종으로 변경하면 완전히 비가역적인 비핵화가 된 것일까? 만약 미국에서 제2의 볼턴이 나타나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북한이 대학에서 핵물리학을 계속 가르치면 훗날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핵물리학을 못 가르치게 하거나 아예 대학을 폐쇄하라고 해도 이 또한 비가역의 범주에 속한다. 같은 논리로 북한에 널려 있는 우라늄 광산에서 북한이 다시 무기급 우라늄을 나중에라도 농축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예 우라늄 광산 자체를 폐쇄하고 미국이 관리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수용할 수 있을까?

결국 V와 I는 CD라는 목표를 향한 여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세부적인 합의로 정할 수밖에 없는 과정(process)이다. 합의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어느 정도 이 과정에 대한 교감도 있었던 모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CD만 넣고도 성공적인 회담이라고 자평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미 CVID가 시작된 곳이 하나 있다. 이번 6ㆍ13 지방선거 결과 수구 기득권 정치세력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대한민국 수구 기득권의 원류는 친일에 앞장선 민족반역자들이었고 후손대대로 분단과 냉전에 기생해 여태 부당한 권세를 누려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을 ‘완전히 청산(Complete Dismantlement)’하는 것은 오랜 세월 한반도 남쪽의 큰 숙제였다. 볼턴의 지혜를 잠시 빌려 보자면, 우리에게도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방식의 청산이 유효할 것이다. 4ㆍ27 판문점 선언 및 6ㆍ12 싱가포르 선언은 분단과 냉전에 기생해 전쟁과 긴장을 부추기며 부당한 권세를 누리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판별해 주는 리트머스 종이와도 같았다. 그렇게 검증된 적폐를 유권자들은 또한 선거라는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평화롭게 청산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비가역적인’ 청산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북한과 미국이 CVID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CVID를 시작하자. 그것이 한반도 CVID와 동북아 평화의 새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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