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숨은 보석 코소보 알바니아

코소보의 다양한 문화지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 프리즈렌. 베네치아공화국의 영향을 받은 돌다리 뒤로 시난 파샤 모스크가 자리하고, 산 위에는 11세기 비잔틴 제국에 의해 지어진 칼라야 성벽이 보인다. 양진하 기자

코소보와 알바니아는 국내에서는 매우 생소한 나라다. 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다는 점과 두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점만이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코소보와 알바니아는 생각보다 우리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달 26일 열린 유럽 축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직후 한국에서는 실시간 검색어에 영국 가수 두아 리파가 올랐다. 그가 결승전에서 노래를 불러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리파는 코소보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알바니아인이다.

코소보 주민의 90% 이상이 알바니아 계통이기 때문에 두 나라 사람들은 ‘알바니아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남한과 북한처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국경을 접하고 있어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 켜켜이 쌓인 문화 유산도 비슷한 점이 많다. 코소보는 국민의 90%가, 알바니아는 60% 가량이 이슬람 신자다. 무슬림이 중동 국가에만 있다고 여겨 온 사람들에게 반전을 선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의 문화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점이 손님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전통과 친절함이라고 말한다. 발칸 반도의 문화와 서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까지 녹아 있는 두 나라는 이국적인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여행지다.

가장 젊은 나라 코소보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주였다. 1998~1999년 전쟁을 치르고 2008년 2월 17일 독립을 선언했다. 발칸 국가 중 세르비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은 슬라브인들이 대부분인 데 반해 알바니아와 코소보 지역에서는 알바니아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코소보 사람들은 코소보를 ‘가장 젊은 나라’라고 말한다. 국가 지위를 얻게 된 지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것도 이유이지만, 인구의 70% 이상이 35세 이하로 실제로 국민들이 젊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뉴본(New Born) 기념상이 있다. 올해의 디자인은 독립 선언 10주년에 맞춰진 것이다. 양진하 기자
고대 도시 프리즈렌

코소보의 다양한 문화 지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는 코소보 남부에 위치한 프리즈렌이다. 인구 20만명의 이 도시는 수도 프리슈티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도시의 모습을 처음 갖추기 시작한 2000년 전부터 오스만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코소보 프리즈렌의 돌다리.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을 받았다. 양진하 기자

프리즈렌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칼라야’라고 불리는 프리즈렌 성에 올라가는 것이다. 표지판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11세기 비잔틴 제국에 의해 지어진 이 요새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 풍경은 빨간 지붕으로 가득 찬 건물 사이사이에 들어 선 이슬람 모스크로 완성된다.

프리즈렌 성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 빨간 지붕들 사이사이로 이슬람 모스크가 눈에 띈다. 양진하 기자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인 프리즈렌 비스트리차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공화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돌다리가 잘 보존 돼 있다. 이 돌다리 앞에 서면 베네치아공화국의 문화와 동로마제국이 지은 요새와 17세기 오스만제국의 지배 하에 지어진 시난 파샤 모스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이슬람교는 배타적인 종교로 알려져 있지만, 코소보에서는 평화롭게 융화된 종교들만 존재할 뿐이다. 프리즈렌을 걷다 보면 부고를 알리는 게시물이 전봇대 등 곳곳에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슬람 신자는 초록색, 기독교 신자는 검은색 등으로 표시한다. 고인의 종교를 존중하는 의미다.

프리즈렌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 알바니아어, 터키어,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4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쓴다. 코소보의 문화 수도로 불리는 이유다. 주말이면 프리즈렌 거리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찬다. 해가 진 뒤 비스트리차 강가는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도 프리슈티나

코소보 국민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지만 수도 프리슈티나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기 좋은 곳이다. 코소보의 4대 대통령이었던 아티페테 야히아가는 코소보 뿐만 아니라 현대 발칸반도 최초의 여성 국가 원수였다. 코소보 사람들은 무슬림의 손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마더 테레사 성당의 옥상에서 내려다 본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의 전경. 양진하 기자

프리슈티나의 과거와 현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역시 의외의 장소인 성당이다. 가톨릭 신도가 3%에 불과한 코소보의 중앙에 성당이 자리한 이유는 마더 테레사 수녀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는 현재 마케도니아 공화국 수도인 스코페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알바니아인이었기 때문에 코소보와 알바니아에서는 모두 테레사 수녀를 국민의 어머니처럼 따른다. 지난해 완공된 마더 테레사 성당에서는 1유로를 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갈 수 있다. 1970년에 지어진 코소보의 첫 대학, 프리슈티나 대학을 비롯해 프리슈티나의 풍경이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전세계인에게 잘 알려진 마더 테레사 수녀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알바니아계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는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딴 성당이 지어졌다. 코소보의 국립박물관에는 테레사 수녀의 얼굴을 스테이플러로 만든 미술품이 걸려 있다. 양진하 기자

커피를 즐기는 나라답게 도시 곳곳에 분위기가 멋스러운 노천 카페가 즐비하다. 흥미로운 점은 프리슈티나에 전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의 동상이 있다는 것. 전쟁으로 파괴된 코소보 재건에 큰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감사의 의미를 담았다. 코소보는 당시 800여개의 모스크 중 218개가 사라졌을 정도로 나라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금도 코소보는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국민의 90%가 이슬람 신자인 코소보에서는 전쟁 중 800여개의 모스크 중 218개가 파괴됐다. 자코바에 남아있는 하두미 모스크의 내부. 양진하 기자
아드리아해의 숨은 보석 알바니아

민족도 언어도 같은 알바니아와 코소보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뭘까? 바다의 유무다. 서쪽에 아드리아해를 두고 있는 알바니아는 숨겨져 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코소보의 도시 자코바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30분 만에 알바니아 국경에 다다르면,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강인 드린 강이 에메랄드 빛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총 길이 335㎞의 강 중 285㎞가 알바니아를 가로지른다. 독수리의 나라라 불리는 알바니아 곳곳에는 빨간 바탕에 머리 두 개 달린 검은 독수리가 그려진 국기가 흩날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알바니아의 오래된 도시 베라트. 강을 향해 창을 낸 14~16세기 건물들이 잘 보존 돼 있어 '천개의 창을 가진 도시'로 불린다. 알바니아 국영 여행사 제공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 베라트

알바니아 중부에 위치한 베라트는 그 기원이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칼라’라고 불리는 베라트 성은 약 2400년 전에 지어졌다. 성벽 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거대한 성벽 내부를 걷다 보면 2400년의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마주하게 된다. 주거 공간 등 대다수 건물은 13세기에 지어졌다. 베라트 역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리스정교의 전통을 존중해 그 이전의 생활양식과 문화도 보존할 수 있었다. 베라트 성 안에는 크고 작은 성당도 100여개 남아 있다.

알바니아 베라트 성벽 안을 걸으면 2400년의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마주할 수 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 이전의 생활양식이 보존된 것은 물론 크고 작은 성당도 100여개 남아 있다. 알바니아 국영 여행사 제공

16세기 알바니아의 화가인 오누프리의 이름을 딴 오누프리 박물관도 세인트 마리 성당 안에 자리한다. 이곳은 비잔틴 건축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베라트에 남아있는 가톨릭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오누프리는 그동안 어둡게 표현됐던 비잔틴 미술에서 전혀 새로운 화려한 색상을 사용한 화가다. 주황빛과 섞인 그가 사용한 빨간색은 오누프리 레드라고도 불린다. 오누프리의 그림 안에는 로마가톨릭과 그리스정교, 이슬람이 모두 표현돼 있다. 알바니아의 머리 두 개 달린 독수리도 로마가톨릭과 비잔틴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러 종교가 얽혀 있는 베라트에도 아픈 기억이 있다. 공산주의 정권 시절 종교가 전면 금지되며 1967년 세인트 마리 성당 내부의 모든 벽화를 하얀 페인트로 덧칠해버렸다.

약 2400년 전에 지어진 베라트의 성곽 안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양진하 기자

베라트 성벽 아래에는 14~16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잘 남아 있다. 건물들이 강가를 향해 수많은 창을 내고 있어 ‘천개의 창을 가진 도시’라고도 불린다. 아름다운 풍경 덕에 알바니아 사람들도 베라트를 최적의 웨딩 촬영 장소로 꼽는다고 한다.

수도 티라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활발한 도시다. 현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날로 정한 금요일 저녁이면 광장과 거리 곳곳에 자전거를 타고 나온 시민들로 가득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공원으로 도시 전체가 푸르고, 로마 시대 지어졌던 건물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티라나 스칸델백 광장에 자리한 국립박물관. 공산주의 잔향이 배어 있는 건물이다. 알바니아 국영 여행사 제공

동시에 공산주의 잔향도 짙게 배어 있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건물들이 공산주의 시대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티라나 중심에는 15세기 오스만제국에 저항했던 장군 스칸델백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68년 스탈린의 동상을 대체해 세워진 알바니아의 영웅이다. 스칸델백 동상이 자리한 스칸델백 광장을 중심으로 국립도서관과 오페라 극장, 국립박물관 등 주요 건물이 자리한다.

알바니아와 코소보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은 공산주의 시대를 개성을 몰수당한 시기로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다. 폐쇄적 공산주의자였던 알바니아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옛 소련의 침략을 염려해 영토 안에 70만개의 벙커를 지었다. 어두웠던 역사를 의미하는 벙커를 시민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벙커를 다 파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은 그림을 그리는 등 새롭게 꾸며 식당과 바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티라나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티라나 사람들은 주말이면 약 40㎞ 떨어진 두러스를 찾는다. 반짝이는 아드리아해를 볼 수 있는 알바니아 최대 항구 도시다.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이 남아 있고, 해변가는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세 나라를 걸어서 탐험하는 알바니아 알프스

저주받은 산들, 혹은 알바니아 알프스라는 별명을 가진 프로클레티예 산맥은 알바니아와 코소보, 몬테네그로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코소보와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각각 이 산맥에 위치해 ‘발칸의 산봉우리’라고도 불린다.

프로클레티예 산맥에는 하이킹을 비롯해 발칸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코소보 영토 안에 있는 루고바 협곡은 29㎞에 이르는데, 세계에서 7번째로 긴 짚 라인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세 나라를 모두 거쳐갈 수 있는 하이킹 코스는 유럽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다.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식도락

코소보와 알바니아에서는 음식에서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나라답게 요거트와 치즈가 매 식사 때 식탁에 오른다. 이슬람 문화권이기에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와 양고기, 생선을 많이 먹는다. 포도 잎을 사용한 지중해식 음식도 발달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코소보에는 터키식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남아 있다. 양진하 기자

두 나라의 공통점은 커피를 즐긴다는 것이다. 알바니아인에게 커피를 함께 마신다는 건 단지 쉬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아니라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즐기는 커피는 차이가 있다. 코소보에서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첨가해 달짝지근한 터키식 커피를 즐긴다. 얇은 파이 반죽 사이에 견과류를 넣고 시럽을 부은 달콤한 터키 전통과자 바클라바도 곁들여 먹는다. 알바니아에서는 설탕을 넣지 않은 이탈리아식 커피를 더 좋아한다.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인접해 있는 지리적 영향이다.

장미 꽃잎을 이용한 음료는 두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다. 알바니아인들은 정원마다 장미를 키울 정도로 장미를 좋아하는데, 가정에서도 음료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무엇보다 저렴한 물가가 여행객을 유혹한다. 다국적 기업의 프랜차이즈 대신 수제 버거가 유명한 코소보에서는 2유로면 맥주와 함께 맛있는 버거를 즐길 수 있다. 알바니아식 음식을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코스로 즐길 경우에도 한화로 1만5,000원이면 충분하다.

코소보 프리즈렌의 주말은 맥주를 마시러 나온 사람들도 북적인다. 양진하 기자
알바니아인들의 전통 가옥인 쿨라에서 전통 복장을 한 알바니아 인들이 악기 연주를 하고 있다. 코소보 주민의 90%가 알바니아 계통이기 때문에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 양진하 기자
#여행 방법

한국에서 코소보와 알바니아까지 갈 수 있는 직항 비행기는 없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비행으로 1시간30분 정도면 각 나라에 닿을 수 있어, 터키항공 등 이용을 추천할 만하다. 두 나라는 모두 철도가 발달돼 있지 않은 반면 버스 노선이 상대적으로 잘 마련돼 있고 교통비가 저렴하다. 하지만 생소한 나라의 대중교통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각 나라 여행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알바니아의 여행사는 국영으로 운영된다.

취재 협조: 주 일본 코소보대사관, 주 일본 알바니아대사관, 터키항공, 피불라(Fibula) 여행사, 알바니아 국영 여행사

프리슈티나ㆍ프리즈렌ㆍ티라나ㆍ베라트=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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